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에서 열린 '신한 퓨처스랩 웰컴데이'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신한금융 제공

금융감독원이 불법외화송금에 대한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 2021년 상반기 3조원이 넘는 비정상 외화거래가 이뤄졌는데, 당시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했던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감독 당국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에는 고위 임원에도 엄중 조치를 할 계획이다”라며 최고경영자(CEO) 제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10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불법외화송금과 관련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말 금융회사에 검사결과 조치예정 내용을 사전통지한 뒤 제재심 심의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

금감원은 이번 이상 외화송금 거래 사태를 엄중히 보는 만큼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했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4일 관련 브리핑에서 “이상 외화송금의 규모가 크고 사안이 중요한 만큼 관련 법규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라면 은행 본점 고위 임원을 포함해 모두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라며 “외국환거래법·지배구조법·특금법·은행법 등을 적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이상 외화송금 거래의 금액이 더 늘어나면 10조원 단위가 될 수 있는데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은행들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의 제재 수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은행권 중 가장 큰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가 이뤄졌다.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23억6000만달러(약 3조1128억원)다. 두 번째로 비정상 외화거래 규모가 큰 우리은행의 16억2000만달러(약 2조1368억원)보다도 무려 1조원가량 많다.

그래픽=정서희

금융권에서는 은행 한 곳에서 3조원이 넘는 불법외화거래가 이뤄진 것은 신한은행이 곧 내부통제에 실패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당국의 판단인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금감원 역시 비정상적인 외화송금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내부통제 실패의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에 따라 신한은행의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은 CEO까지 올라갈 수 있다. 금감원의 사정권이 외화송금거래가 이뤄진 기간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한 진옥동 회장까지 넓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거래는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을 지낸 기간인 2021년 이후 이뤄졌다. 진 회장은 지난달 신한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지난 2019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신한은행장을 맡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 당국에서 불법외화송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만큼 은행 내부에서도 제재 수위가 어디까지 갈지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진 회장 역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제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진 회장은 지난해 10월 불법 외화송금 거래 등 내부통제 부실로 국회의 국정감사에 소환된 당시 “내부교육뿐만 아니라 (내부통제에 대한) CEO의 의식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일벌백계의 자세로 (내부통제가 되는) 분위기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CEO가 내부통제 작동에 있어 최종책임자의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은행장 제재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금감원은 불법외화송금과 관련해 은행에 대한 기관제재는 물론 책임이 있는 고위임원에 대한 인적제재도 고려하고 있다. 이 부원장은 CEO 제재에 대해서는 “제재와 관련해 CEO 등 특정 대상을 말하기 어렵다”라며 말을 아꼈지만 “제재 사전통지를 했지만 현재 제재심이 진행 중이라 대상이나 수위를 확정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또 다른 금융 당국 관계자는 “(CEO 제재와 관련해) 좀 살펴봐야 한다”라며 “아직 말하기 어려운 단계다”라고 했다.

신한은행 전경. /신한은행 제공

금융당국이 잇단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은행에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는 점도 은행장 제재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금융당국은 사회적 파장이 큰 ‘중대 금융사고’와 관련해 금융사 대표의 책임을 강화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등 CEO에 내부통제 관리의 의무를 주고, 중대 금융사고에 대해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다.

진 회장은 이미 은행장 시절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로 금감원으로부터 경징계(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은 전적이 있다. 내부통제 감독 실패로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으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한 단계 낮은 제재가 결정됐다. 만약 진 회장이 불법외화송금 사태로 또다시 감독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면 CEO로서의 명성에 흠집이 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신한은행은 이상 외화송금 거래에 연루된 직원에 대한 내부 징계를 진행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통상 일반 직원의 경우 자율처리를 하라고 하는데, 금감원의 조사가 끝나고 검사서가 나와야 해 추후 제재 절차가 마무리되면 내부 징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