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국내 거래소인 고팍스의 인수를 추진하면서, 고팍스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전북은행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인수가 확정되면 처음으로 외국인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지배하게 돼 새로운 규제를 적용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낸스는 복잡한 지배 구조와 불투명한 회계 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그래픽=손민균

8일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3일 바이낸스는 자체 마련한 구제기금인 ‘산업회복기금(IRI·Industry Recovery Initiative)’을 통해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고팍스에 대한 자금 지원에 나섰다. 아직 정확한 금액의 규모는 알려지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준행 대표의 고팍스 지분 40%의 가격에 맞먹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낸스는 경영 위기로 고객 예치금 상환 문제를 겪고 있는 고팍스를 지원하는 대가로 이준행 대표의 지분을 가져올 것으로 관측된다. 이준행 대표가 최근 등기임원 직책을 내려 놓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가 퇴임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가 가까워지면서 전북은행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현재 전북은행은 고팍스에 실명계좌를 제공하고 있어 자금 세탁 방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런데 고팍스의 새로운 주인이 될 바이낸스는 지배구조 등 여러 부분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돼 있지 않아 파트너사인 전북은행이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레온 풍 바이낸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가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조선비즈 2023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강연을 갖고 있는 모습. 현재 그는 이준행 고팍스 대표의 후임 자리로 거론되고 있다. /조선비즈DB

바이낸스는 현재 서류상 본사 위치가 조세 회피처인 케이맨제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금융 국가들의 관리·감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또 지배구조도 불투명한 데다, 회계 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로 인해 현재 바이낸스가 자금을 어디서 조달하고, 어디에 투자를 하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자오창펑 바이낸스 대표 등 주요 임원들이 미국 검찰로부터 자금 세탁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점도 전북은행 입장에선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만일 미국 검찰이 이들의 혐의를 입증해 유죄 혐의가 입증되면 고팍스 역시 평판이 크게 하락해 큰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전북은행 측은 금융위원회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만나 자금세탁 방지 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도 감안해 이에 따른 대응 방법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바이낸스가 가상화폐를 이용한 파생상품 등으로 몸집을 키워온 점도 염두에 두고 준비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현행법에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파생상품을 설계해 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현재 입법이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에서 규제가 풀릴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전북은행 관계자는 “아직 고팍스의 정식 입장을 듣지 못해 어떤 점을 구체적으로 보완할지에 대해 언급하기엔 이르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금 세탁 방지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준행 대표가 만약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고팍스의 신임 대표에는 레온 풍 바이낸스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가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레온 풍 대표는 바이낸스의 합류 전 차량 공유 회사 우버 말레이시아 법인장과 쏘카 말레이지사 법인 최고경영자(CEO)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풍 대표 외에도 바이낸스의 실무진들이 고팍스의 주요 임원으로 임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