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당산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지난해 12월 나이키의 스니커즈 운동화 조던1을 리셀 플랫폼(패션용품 되팔기 서비스)에 올렸지만 아직도 구매자를 찾지 못했다. 한정판 운동화가 고가에 거래되던 지난해 초까지만 그는 신발 리셀로 짭잘한 부수입을 거뒀다. 구입가의 두 배에 되팔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리 상승으로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신발 리셀 시장이 직격탄을 맡게 됐다. “아직도 팔지 못한 신발들이 열 켤레 넘게 있는데, 계속 수집품처럼 마냥 끌어안고 있어야 할까 봐 애가 탄다”고 그는 말했다.

저금리 국면에서 각광을 받았던 리셀, 조각투자, 가상자산 등 대체투자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들 대체투자는 20~3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재테크 방식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고금리의 직격탄을 맡게 됐다.

나이키가 2021년 출시한 한정판 운동화 '트래비스 스콧 x 프래그먼트 x 에어 조던 1 하이 OG'는 출고가는 23만원(200달러)이지만 지난해 초 680만원에 거래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나이키

◇나이키 한정판 신발, 680만→234만원 급락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협업에 내놓는 한정판 운동화는 리셀 시장의 주력 상품이었다. 그런데 대표적인 품목들이 줄줄이 폭락했다.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과 나이키가 협업해 2021년 내놓은 ‘트래비스 스콧x프래그먼트x에어 조던 1 하이 OG 밀리터리 블루’는 지난해 2월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톡엑스(StockX)에서 680만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지난 28일 매매가가 234만원을 기록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지난해 초 100만원 안팎에서 매매가 이뤄지던 나이키 ‘에어 조던 1 레트로 하이 OG 시카고 2022′는 45만원으로, 40만원에 거래되던 나이키 ‘덩크 로우 판다’는 15만원으로 각각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리셀 시장 침체는 한정판 상품을 내놓아 짭잘한 수익을 거두던 글로벌 스포츠 회사의 신사업에도 타격을 가했다. 아디다스가 지난해 10월 미국 힙합 가수 예(이전 이름 카니예 웨스트)와 한정판 발매 사업을 중단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액면가 밑도는 조각투자 증권…한우 투자 40% 하락

조각투자도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투자상품이다. 조각투자는 상업용 부동산, 미술품 등 고가의 자산을 1000원∼10만원 단위의 지분으로 나눠 여러 명이 공동투자 하는 것인데 해당 자산 상승세에 힘입어 2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수요가 뚝 끊겼다.

액면가 밑으로 거래되는 부동산 조각투자 수익증권이 등장했을 정도다. 부동산 조각투자 서비스 ‘카사(kasa)’의 TE물류센터의 경우 지난해 7월 4일 주당 5150원에서 지난해 12월 29일 주당 3480원으로 32.4% 하락했다. 또다른 업체 ‘비브릭’의 비스퀘어타워도 지난해 12월 30일 공모가 1000원에서 30% 떨어진 700원까지 떨어졌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 빌딩 전경. /조선DB

한우 조각투자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우 시세가 폭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어야만 했다.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에 따르면 이달 말 수송아지의 경우 시세가 279만원으로 전년 대비 39.6%하락했으며 암송아지는 188만원으로 전년 대비 83만원 가격이 하락했다. 뱅카우 투자자 가운데 80%가 20~30대다.

가상자산 투자도 된서리를 맞고 위축됐다. 국내 1위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2022년 3분기 영업수익이 26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2% 줄었다. 업비트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가상자산 가격이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투자 인원이나 거래 빈도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거래소 이용자 가운데 30대가 31%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40대(26%), 20대(24%) 순이었다. 가상자산 시장 위축은 해당 시장에서 번 돈으로 다른 자산을 사들이는 MZ세대 신흥 부자도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기성세대보다 얇은 주머니…'고금리 불황’ 국면서 더 흔들

기성 세대에 비해 쌓은 소득이 낮고 쌓은 자산이 적은 20~30대의 특성이 이들 ‘신(新) 대체투자’ 시장의 위축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된다 싶은 곳에 몰려가는 행태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아직 온기가 도는 위스키 리셀 시장이다. 맥켈란이나 발베니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위스키의 경우 리셀 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된다. 멕켈란 셰리 오크 30년산의 경우 국내 판매가는 690만원이지만 리셀 시장에서는 1000만원이 넘는 금액에 매매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소비 연령대가 높은 위스키의 특성상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는 게 주류 업계의 설명이다.

2022년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조선DB

미술품 시장에서도 20~30대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작품이나 장르가 더 가격 하락폭이 크다. 이른바 ‘빅3′라 불리우는 문형태, 우국원, 김선우 작가 작품의 2022년 낙찰 총액은 전년 대비 줄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문형태 작가는 2억원으로 66.7%, 우국원 작가는 15억8000만원으로 57.8% 감소했다. 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2022년 미술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 10곳의 2022년 낙찰총액은 전년 대비 28.4% 감소했다.

고금리에 예금 등 전통적인 금융자산으로 돈이 이동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MZ세대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을 활발히 찾고 나섰다”면서도 “최근 유동성이 축소되는 시기에는 이런 신재테크 상품의 가격가치가 하락하면서 예금과 같은 전통 투자처로 이동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