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고’ 이후에도 금융사에서 전산장애가 잇따르면서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케이뱅크·우체국금융·IBK기업은행 등 금융사 세 곳에서 접속장애가 연이어 발생했다. 특히 불편을 겪은 고객들에 대한 보상책이 미흡한 데다가, 이 사고로 입은 피해를 증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7일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애플리케이션(앱)이 7시간 넘게 먹통이 됐다가 정상화됐다. 오류가 발생한 시간 동안 케이뱅크 체크카드를 비롯해 케이뱅크 계좌로의 입·출금 거래 등이 제한됐다. 케이뱅크를 통해야 코인을 살 수 있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이용자들도 원화 입·출금 서비스 등이 중단되며 덩달아 불편을 겪었다.

케이뱅크 애플리케이션 캡처

다음날인 18일에는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스마트뱅킹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오후 2시 30분쯤 발생한 장애는 약 1시간 뒤 웹 기반 인터넷 뱅킹 등을 중심으로 정상 작동했으나, 모바일 뱅킹은 9시간이 지나서야 복구됐다. 이틀 뒤인 지난 20일엔 IBK기업은행에서도 인터넷·모바일 뱅킹,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약 1시간가량 접속 장애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모바일뱅킹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 확산과 함께 전산장애도 증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융권 전산장애는 ▲2019년 196건 ▲2020년 198건 ▲2021년 228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 들어선 8월까지 총 159건의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최근 4년 동안 전산장애로 발생한 금융권 피해 추정액은 346억4137만원에 달한다.

전산장애로 발생한 피해는 원칙대로라면 구제받을 수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계약체결 또는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이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6년 우리은행은 전산장애로 전 영업점의 창구업무가 5시간 동안 전면중단된 것과 관련해 피해 신고를 접수한 150건에 대해 배상에 나선 바 있다. 최근 사고가 발생한 케이뱅크·IBK기업은행·우체국도 보상을 위한 피해 사실을 신청받고 있다.

문제는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 금융소비자가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보상기준이나 체계가 없다 보니 민원을 제기한 뒤 사고 발생 후 은행과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전산장애로 발생한 불편함이나 시간적 손실, 정신적인 고통 등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체 거래 특성상 금전적 손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점포를 통폐합 해 '디지털 라운지로 전환한다'는 안내문이 붙은 서울 노원구 신한은행 월계동지점의 모습. 월계동 주민들이 '창구 남아라' 등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은행 앞에 붙이고 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전산장애로 인한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전산장애 당시의 매매 등을 증명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피해가 객관적으로 증빙돼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 규모 2위인 빗썸에서 90여분간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빗썸이 2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이 과정은 약 5년이 걸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체 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작아 접속장애로 인한 유·무형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구축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장애 요소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인프라 확충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