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 당국이 서울·경기 등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해 조여왔던 대출 숨통을 풀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가계대출 시장 위축이 심화하고 실수요자들의 부동산 시장 진입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출 금리가 크게 오른 데다, 대출총액 규제도 있어서다.

이달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은행에 담보대출 금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27일 정부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Loan to Value)을 서울과 경기 등 규제 지역과 주택 가격에 상관없이 5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현재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해서는 비규제지역의 경우 LTV 70%, 규제지역은 20~50%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푼 것이다.

이와 함께 불허했던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도 허용했다. 중도금 대출이 제한되는 기준선은 분양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확대했다. 단,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현행 비규제지역 60%, 규제지역 0%를 유지한다. 이번 LTV 완화 조치는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을 거쳐 2023년 초 시행될 전망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에도 은행의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잇따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데다 금리 부담이 커 규제 완화가 시장 분위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둔화하고, 투자 수요 감소로 신용대출도 줄어 올해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 대출 시장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2~3년 전 주택 시장의 지렛대로 활용된 금리 연 2%대의 대출상품은 사라졌고,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7% 넘어 8%를 바라보고 있다.

LTV 규제 허들이 낮아져도, 금리의 벽이 높은 데다 총 대출액이 1억원을 초과하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도록 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여전해, 대출을 최대한 일으켜 내 집 마련을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서울에 시세 9억원짜리 아파트를 LTV 50% 상한에 맞춰 4억5000만원을 30년 만기, 금리 연 5%, 거치기간(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부하는 기간) 1년으로 주택담보대출로 받아 구매한다면, 거치 기간 월평균 이자는 199만3150원, 매달 내야 하는 납입금이 245만1871원이다.40년 만기 시 매달 216만9884원의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대출 금지 규제가 사라진 시세 15억원 주택의 경우 LTV 50% 상한인 7억5000만원을 30년 만기,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 연 금리 5% 기준으로 실행하면,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 상환금액이 402만6162원이다. DSR 40% 규제 하에 월평균 소득이 1032만여원을 넘어야 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LTV를 풀더라도 DSR 규제가 있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7% 수준인데다 집값도 하락하고 있어 LTV 완화에 따른 실수요자의 시장 진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1·2금융권에서 받은 변동·혼합형 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금융공사의 3%대 장기·고정금리 정책모기지로 대환(갈아타기)해주는 안심전환대출의 기준을 풀고 상한을 확대했지만, 수요자들이 부담 완화를 체감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

주택 가격이 6억원을 넘으면 안심전환대출을 받을 수 없고, 부부 합산 소득이 1억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대출 한도는 3억6000만원이다. 안심전환대출 금리는 연 3.8%(10년)∼4.0%(30년)다.

박세라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주택 시장 정책 중 수요를 가장 민감하게 건드릴 수 있는 LTV를 일괄적으로 단일화해 규제를 완화했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 있는 조치이지만 금리 인상과 DSR 규제가 유지되고 있는 현재 시장에 큰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8일 기준으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10여 년 만에 3%대를 돌파했다. 앞서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0.5%P 인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내 연 8%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차주들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