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해 신규 가입고객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보험업계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었다. 국내 주요 보험사들은 헬스케어 서비스를 출시했거나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일각에서는 서비스가 유사해,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NH농협생명은 13일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NH헬스케어’를 공개했다. NH헬스케어는 ‘쉽고 재미있는 생활건강 솔루션’이라는 컨셉으로 건강관리와 연계한 게임과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운동 목적에 맞는 최적의 걸음목표를 안내해주는 걷기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통한 스트레스지수·호흡수·심박수 측정 ▲음식 사진을 찍으면 인공지능(AI)이 해당 칼로리를 자동으로 인식해 기록해주는 ‘AI푸드렌즈’ ▲그림을 찍어 올리면 전문 심리상담사를 통한 미술 심리검사 ▲전국 요양시설 및 요양병원 정보 제공 기능 등을 탑재했다.

현재 NH농협생명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보험사는 삼성생명(032830)·교보생명·한화생명(088350)·신한라이프·AIA생명·삼성화재(000810)·현대해상(001450)·KB손해보험 등 9곳이다. 스마트 기기에서 앱만 설치하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보험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모두 스마트 기기와 AI 기술을 활용한 운동코칭, 식이관리, 심리상담, 간단한 유전체 분석 수준으로 한정됐다. 이 탓에 사용자 입장에선 서비스마다 큰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생명은 지난 4월 ‘내 손안의 맞춤형 건강관리 비서’를 컨셉으로 한 헬스케어 서비스 ‘더 헬스’를 출시했다. 더 헬스의 주요 기능을 보면 맞춤형 운동, 식이관리, 마음건강 등 다른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와 비슷하다.

최근 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위해 전문 자회사를 세운 KB손해보험과 신한라이프도 콘텐츠 측면에서 아직 특별한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화재 정도가 세브란스병원과 협력해 지난달 헬스케어 서비스 ‘애니핏 플러스’를 개선해 새롭게 출시, 사용자의 향후 10년간 발병 확률을 알려주는 특화된 ‘건강체크’ 기능을 제공한다.

아직은 많은 사용자가 AI 활용 기업에 불편함을 표하면서도 헬스케어 AI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선모씨(35)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헬스앱이나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서도 필요한 건강관리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데, 굳이 보험사의 비슷한 서비스를 찾아서 사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의 역량도 문제지만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분명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가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보험사들이 활용하기에 기준이 협소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사에 공공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보험사들이 차별화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는 역량이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라면서 “다만 비의료기관이 가능한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기준이 아직 불명확해 보험사들도 서비스 범위를 넓힐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 데이터를 수집해야 보편적인 건강관리를 넘어 특정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데,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여전히 보험사에 빅데이터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헬스케어 시장은 보험사뿐 아니라 빅테크 등 플랫폼 사업자와 의료기관 모두 참여하고 있어 향후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정 실장은 “보험사들이 기존의 건강보장 보험 상품이나 장기요양보험 위에 데이터 기반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잘 접목한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빅테크 플랫폼 사업자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규모는 매해 30%씩 성장해 지난 2019년 1063억달러(약 138조원)에서 2026년 6394억달러(약 833조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약 9조원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