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어피너티, 어펄마캐피털 등 외국계 사모펀드 대주주와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법적 분쟁을 벌이면서 기업공개(IPO)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신창재 회장이 강력한 의지로 IPO를 밀어붙이고 있다.

주주 간 풋옵션 분쟁 때문에 한국거래소의 IPO 절차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IPO가 이뤄져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교보생명의 주장이다.

교보생명 본사 사옥./교보생명 제공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신 회장 측이 어피너티와의 풋옵션 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IPO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다.

앞서 풋옵션을 원하는 가격대로 행사하겠다는 어피니티 측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 회장 측이 맞서며 현재까지 오랫동안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교보생명이 IPO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최근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이 어피너티와 어펄마의 풋옵션 행사에 대해 ‘시기적으로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두 차례 내렸기 때문이다. 국제중재재판 판정은 국내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교보생명은 국내에서도 자사의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는 회계법인들과 법적 소송 중이다.

물론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신 회장 측은 여전히 풋옵션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교보생명은 공정시장가치(FMV)가 재산출되지 않으면 풋옵션 분쟁을 최종적으로 끝낼 수 없는 만큼, IPO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계법인이 가치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드러났고, 잘못 산정된 FMV를 기반으로 한 풋옵션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풋옵션은 과거 시점으로 소급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가치를 다시 따져야 한다는 게 교보생명의 주장이다. FMV란 시장에서 구매자와 판매자 간 거래를 수행하는 가액으로 회계법인 등에서 평가를 수행한다.

/조선비즈

만약 교보생명이 IPO를 하면 시장에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FMV가 형성된다. 외국계 사모펀드도 시장 가치에 따라 투자금 회수가 가능해지면서 풋옵션 분쟁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셈이다.

문제는 ICC 1차 판정이 기각되면서 상황이 불리해진 어피너티 측이 지난 2월 2차 중재를 신청하는 등 법적 공방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ICC는 단심제가 원칙으로 2차 중재가 열릴지는 미지수다.

국제중재법원에서 풋옵션 가격 산정이 잘못됐다는 결과가 두 번이나 나온 만큼, 어피니티와 어펄마도 투자금 회수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어피너티도 “교보생명 상장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외국계 자본이 교보생명의 IPO를 방해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경영권을 노린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창재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교보생명 회장)이 지난달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에서 화상으로 열린 강원2024 제2차 IOC 조정위원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신 회장과 어피너티의 악연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보생명 대주주였던 대우인터내셔널이 지분 24%를 매각하려 할 때 어피너티는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신 회장의 우호 지분세력으로 나선 것이다.

컨소시엄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총 1조2054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면서 어피너티는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IPO를 하지 않으면 풋옵션 계약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신 회장과 체결했다.

이후 교보생명의 IPO가 지연되면서 어피너티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며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주당 가격을 40만9912원(총 2조122억원)으로 평가했다.

신 회장 측은 풋옵션 행사 시점 주가인 20만원대를 제시하면서 풋옵션 행사를 거부했다. 신 회장이 해당 가격에 풋옵션을 받아들이면 기존 회사 지분을 30% 이상 매각해야 하고, 어피너트 측의 지분을 전부 가져와도 지분율이 하락해 경영권을 위협받는다.

교보생명은 IPO 추진을 통해 시장과 신 회장 우호 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려는 어피너티에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