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지금 무슨 카드 쓰고 계세요? 요즘은 카드사가 캐피탈보다 혜택이 좋습니다.”

전날인 11일. 서울 가양동의 한 중고차 판매장에서 2018년식 그랜저 중고차 결제 방법을 묻자 판매원이 캐피탈 대신 카드 할부를 권했다. 차를 구매하려는 A씨의 신용등급은 2등급이다. A씨가 2470만원짜리 2018년 그랜저를 한 대형 금융지주사 카드 할부로 살 경우, 금리는 5.2%부터 시작했다. 대출 기간도 최대 60개월로 넉넉했다.

반면 같은 금융지주사 캐피탈 상품은 이보다 2% 이상 더 높은 7.8%에서 시작했다. 중도상환 수수료도 캐피탈이 카드사 보다 1%포인트(p) 높았다. 판매원은 “카드 한도가 낮은 20대 사회 초년생을 빼면 높은 금리를 내면서 굳이 캐피탈 할부를 쓰겠다는 사람은 신용등급이 낮은 분들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카드사가 캐피탈사 ‘텃밭’이었던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을 거세게 공략하면서, 캐피탈사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캐피탈사들이 반격에 나서려 했지만, 최근 금리가 뛰면서 사업 자금을 충분히 조달하기가 어려워졌다. 금융당국은 캐피탈사를 겨냥해 올해 건전성 관련 규제까지 강화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캐피탈업계가 지난해 보유한 자동차금융 자산은 27조9400억원으로, 2020년 28조2400억원에 비해 1.1%(3000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카드사들의 자동차 할부 대출 규모는 2020년 8조6638억원에서 2021년 9조7663억원으로 1년 사이 1조원 넘게 불었다. 2014년 카드사 자동차 할부 대출이 1조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7년 새 9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자동차 할부금융은 보통 신차나 중고차를 사는 차량 구매자를 대신해 차 값을 지불해주고, 여기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사업이다. 이전까지 이 시장은 캐피털사들의 독무대였다. 카드사나 은행 같은 금융사가 끼어들기에는 작은 시장으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신한카드를 포함한 주요 카드사들이 2007년 ‘다이렉트 오토 플러스’ 같은 상품을 선보이며 자동차 할부 금융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파이를 키우진 않았다.

그러나 자동차 할부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신사업에 목마른 카드업계가 이 시장에 제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으로 주요 완성차 제조기업은 판매량이 대부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차 가격이 오르는 카플레이션(car+inflation) 현상으로 차 한 대당 판매 이익이 증가한 덕분이다. 여기에 전기차 전환 수요까지 늘었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카드와 캐피탈이 같은 여신전문금융업으로 묶여 있지만, 캐피탈 이용자 신용도가 아무래도 카드사보다 낮기 때문에 채권 발행 금리가 높다”며 “조달 환경이 좋지 않아 이자 마진을 줄여서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신용평가원 발표에 따르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서 캐피탈사 점유율은 70%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 그러나 2016년 캐피탈사 점유율 85%에 비하면 15%p가 줄었다. 같은 기간 카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서 25%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캐피탈사들은 창업투자나 중소기업 대출, 리스 사업 부문을 강화해 자동차 금융의 빈자리를 메우려 하고 있다. 이 분야는 안전한 담보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금융 시장에 비해 안정성이나 수익성이 떨어진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창업투자는 대출 규모가 큰 만큼 연봉이 높은 전문 기술 평가 인력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 대출 역시 기술력 있는 기업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자금이 충분한 편이라 캐피탈 자금까지 끌어쓰는 기업 가운데 내실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모든 캐피탈사는 건전성 관련 규제가 강화돼 레버리지배율을 9배 수준에 맞춰야 한다. 레버리지배율이란 기업이 외부 자본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부채성 비율’이라고도 한다. 자본금과 부채를 합친 회사 전체 자산에서 차입금 같은 빚을 뺀 순수한 자기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배율로 나타내기 때문에 재무 위험도를 측정하는 가늠자로 쓰인다.

지난해까지 캐피탈사의 레버리지배율 규제는 10배였다. 새 건전성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영업 자산을 늘리려면 자본을 늘리거나, 영업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레버리지배율 규제는 앞으로 더 강화된다. 2025년부터 캐피탈사는 레버리지배율을 지금보다 더 낮은 8배에 맞춰야 한다. 만약 2025년 이전에 배당성향이 30%를 초과하면 즉시 레버리지배율 8배 규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