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동 기자

9일 결판이 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드러난 ‘미래의 현안’이 있다면 수도권과 지방의 거대한 격차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십수 년 간의 민주당 독점 정치가 광주·전남의 지역발전을 막았다. 그 흔한 복합쇼핑몰 하나 없는 이유”라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발언하면서 시작된 호남 지역의 복합쇼핑몰 공방이다. 원래 이 의제는 지난해 7월 광주의 한 비(非)민주당 성향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작됐는데, 대선이라는 정치 공간에서 확 불붙게 됐다.

이 문제가 호남 일대를 뒤흔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소비, 특히 서비스 소비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방은 서울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없는 지역으로 인식된다.

두 번째는 지역 기반 정당에 대한 몰표가 가능한 ‘물적 토대’였던 지역개발 효과와 그에 따른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경제가 쇠퇴하고, 경제 구조가 발전하면서 SOC 개발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해서다. 일치단결해 한 정당을 밀어준 뒤, 개발사업을 통해 낙수효과를 다 같이 누릴 수 없게 된 지역 주민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필연적이다.

이번 건의 경우 2015년 복합쇼핑몰 투자 무산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두 문제가 결합돼 그만큼 인화성을 키웠다. 언제든지 다른 사건을 통해 터져 나올 수 있었던 이슈였던 셈이다. 또 호남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구·경북 일대에서도 지역 경제는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정치적 귀결은 지역 내 ‘야당’이라 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이전 대선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 저서 토대로 작성.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펴낸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지난해 10월 같은 대학 이승윤 교수(사회복지학) 등과 함께 주요 이슈별로 어느 정도 ‘개인적인 분노를 느끼는지’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 조사에서 ‘서울과 지방 간의 불균형 발전’에 분노를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는 53.0%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56.5%) 못지않게 많았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소득격차’(48.5%), ‘학력이나 학벌로 인한 차별’(44.6%)을 큰 폭으로 앞질렀다.

대기업 정규직의 새로운 일자리 중 사무직의 남방한계선은 경기도 판교, 기술직(엔지니어)의 남방한계선은 경기도 기흥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지방의 소외는 점차 심해져 간다. 그리고 선진국으로 진입해가는 수도권과 달리 점차 주변부화 되는 지방의 현실은 고스란히 수도권으로 돌아온다. 자생력이 약한 지방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권 주민들이 낸 세금이 투입된다. 2021년 지자체 주민 1인당 투입되는 세출예산을 보면 경북 영양군은 1703만원인데, 서울 서초구는 10분의 1인 165만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은 미래에 심각한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수도권 과밀화는 덤이다.

지방 경제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제조업 공장이 사라지고 은행원이나 자동차 조립공장 근로자 같은 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제 구조 변화다. 또 SOC 투자가 쌓이면서 추가적인 개발 사업 효과가 떨어지게 됐다. 변화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지역 경제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과 투자, 그리고 지역 재생이 필요하지만 그에 걸맞은 계획 수립·자금 조달·집행·감독 및 평가를 위한 자원이 부족하고 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다. 도로, 항만, 공항, 공업용지 등 중앙정부 재정을 투입한 전통적인 개발 사업이나 특정 제조업 육성 위주의 산업 정책이 예전과 같은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효과적인 정책 수단은 일종의 개발금융이다. 먼저 개발금융은 장기간에 걸친 복합 개발이 가능케 한다. 또 경우에 따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민간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 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성예산제약에서 자유롭다. 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해당 개발 사업과 관련된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도 용이하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중앙정치나 지역정치의 니즈에 따른 단기적 의사결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사업 진행이나 결과에 대한 감독 및 평가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조선비즈

선진국은 정책금융기관이 지역개발 업무를 맡거나, 지역개발 업무를 위한 민·관 협력 금융기관이 존재한다. 일본의 정책금융공고(JFC)의 경우 중소기업, 자영업자, 농립수산업 종사자에 대한 정책금융자금을 제공하는 기관인데 지자체와 협업해 다양한 지역재생 사업에 투자한다. 일본 전역에 설치된 152개 지점을 통해 420곳의 지자체와 협업하고 있다. 일본정책공고는 “다양한 지역 내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인근 10개 지자체가 맨체스터 시티 기금(Greater Manchester Fund)을 만들어 도심재생 등 지역개발 사업에 투자한다.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 등 지역개발을 목적으로 한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은 지역별로 민간이 주도해 풀뿌리 금융기관을 만들면, 여기에 자금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개발금융기관(CDFI: 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의 정책금융은 주로 수출 지원, 중소기업 금융 등에 치우쳐 있다. 원승연 명지대 교수(경영학)와 이기영 경기대 교수(경제학)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정책금융기관 대출 705조원(잔액 기준)을 뜯어보면 기업은행이 29.9%(210조원), 산업은행이 17.1%(121조원), 수출입은행이 9.8%(69조원)를 차지한다. 그리고 주택도시기금이 16.6%(117조원), 주택금융공사 대출이 13.7%(97조원)이다. 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공급과 주택 공급에 뒤따르는 대출지원이 정책금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원 교수는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특히 “예외 없이 역대 정부가 표방한 산업정책에 따라서 정책금융기관이 특정 부문에 대한 자금배분 비율을 높여 왔음을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선진국의 정책금융기관들이 지역개발에 돈을 쓰는 이유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역의 성장 잠재력을 북돋고 산업을 되살리는 것이 건 별로 SOC 사업이나 기업에 지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탈공업화로 쇠락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진흥이 필요한 데, 여기에 마중물을 공급하는 정책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제 한국도 지역개발을 정책금융의 주요한 목표로 삼아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대선 캠페인을 보면서 더욱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