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의 법적 체계에 관해 미국, 프랑스, 영국, 홍콩, 호주 등 여러 나라가 논의 중입니다. ICO를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지 범위의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IPO와 동일한 방식으로 규제돼야 할까요?”

프리마베라 디 필리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20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2022 가상자산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ICO의 기회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프리마베라 디 필리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하버드 로스쿨 인터넷·사회를 위한 버크만-클라인센터 교수이자 국립과학연구·교수센터 영구 연구원이다. 책 ‘블록체인과 법: 코드의 규칙’ 저자로도 유명하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혁신, 도전, 미래" 조선비즈 '2022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프리마베라 디 필리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기조연설을 통해 가상자산의 기회와 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조선비즈

필리피 교수는 “ICO는 쉽게 말해 블록체인 기반의 IPO(기업공개)인데, 독특한 특성이 있다”면서 “ICO의 경우 발행되는 것은 회사의 주식이 아니라 암호화폐 토큰으로 실제 기업과는 독립적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고, 해당 토큰 발행을 책임지는 법적 실체가 없을 수도 있고, 중앙 집중식 증권 거래소에서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스마트 계약에 의해 분산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IPO를 통해 기업은 일반 대중에게 자사주를 공개적으로 발행하게 된다. 증권 거래소에서 중앙 집중식으로 관리되고 당연히 당국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된다. 구매에 참여하는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리피 교수가 설명한 ICO의 기본 원리를 살펴보면 우선 자금을 모으려는 특정 사업이 자금 조달을 시작하기 위해 토큰을 발행하고, 그 토큰을 통해 투자자에게 일종의 혜택을 제공하게 된다. 투자자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암호화폐를 보내고, 해당 토큰 발행·교환 책임자가 받게 되고 이어 특정 수량의 토큰이 할당된다. 사업 용도를 위해 스마트 계약으로 모인 암호화폐는 해당 사업의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고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수년에 걸쳐 사업이 더욱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 그 토큰은 더욱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토큰 소유자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거나 잠재적으로 2차 시장에서 토큰을 취득하려는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다.

필리피 교수는 “토큰의 설계에 따라 혹은 발행되는 상황에 따른 기능적 측면과 시스템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지불금 등 돈을 대체할 수 있거나 상품권처럼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는 ‘유틸리티 토큰’, ‘자산담보 토큰’, 기업의 특정 주식과 연결될 수 있는 ‘보안 토큰’ 또는 ‘투자 토큰’, 특정 거버넌스와 관련돼 토큰 보유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 토큰’이나 ‘거버넌스 토큰’ 등 기술적인 요소에 따라 토큰을 분류할 수 있는데, 각각의 시스템과 기능에 따라 법률 자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필리피 교수는 “미국과 미국 법리에 의존하는 모든 국가에서는 ‘하위 테스트’를 통해 ICO의 투자 계약 자격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투자 계약이 합당하다면 전통적인 증권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이 하위 테스트는 네 가지의 기준을 근거로 삼는데 자금 투자 여부, 자금 투자가 공동 기업에서 수행되는지 여부, 특정 사업의 자금 조달·개발을 위한 것인지, 이익에 대한 기대가 있는지 여부 등”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피 교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결정은 ICO가 증권인지를 파악하려면, 즉 테스트를 통과하는지 보려면 해당 형식의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수많은 ICO가 형식적으로 해당 기준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토큰을 생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체계 하에 지난 2017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레스토랑 리뷰 앱 ‘먼치(Munchee)’가 추진한 1500만 달러 규모의 ICO를 중지시켰다. 유가증권등록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필리피 교수는 “‘먼치’ 사례를 보더라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실제로 ICO를 증권처럼 규제돼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프랑스는 법적 기업의 존재와 그에 대한 주식이 발행이 요구되기 때문에 증권법 내에서 ICO에 대응할 수 없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 협의에 따라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ICO 토큰과 증권에 대한 구분을 도입했고, 증권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통화 및 금융 규제 당국에서 허가 권한을 갖고 ICO가 증권법에서 자유로운지 또는 준수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블록체인에서 특정 유형의 채권 발행 가능성을 인정한 국가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혁신, 도전, 미래" 조선비즈 '2022 가상자산 콘퍼런스'에 참석한 청중들이 기조연설 강연을 듣고 있다. /조선비즈

필리피 교수는 “중국은 기본적으로 2017년에 이미 모든 ICO가 운영을 중지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이미 운영 중인 경우, 모든 투자자에게 환불해야 했다”면서 " 2021년에는 중국 본토에서 모든 ICO가 불법이라고 선언됐고, 특정 사업 자금 조달에 더 이상 토큰을 발행할 수 없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의 정부 발행에 집중하고 있으며 민간 부문에서 경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한국도 지난 2017년에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ICO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고 말했다.

필리피 교수는 “보다 원칙에 기반한 규제 방식인 증권법을 적용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위험을 제거해 투자 계약에 뛰어들 투자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적과 위험이 동일하면 적용하는 규정도 같아야 한다는 규제적 관점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반면에 투자자의 위험을 기술로 줄여나갈 수 있다면, ICO는 결국 투자 계약과 기능적으로 동등할 것이고, 규제로 인한 장애를 줄임으로써 위험을 낮추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필리피 교수는 “예를 들어 ‘에스크로 시스템’ 등이 구축되고 있는데 락킹이나 베스팅 등을 마련해 투자자가 돈을 투자하더라도 사업자가 이정표에 도달한 경우에만 자금이 사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가 너무 많으면 토큰 가치가 너무 높아 투기성이 강해지고, 참여 가격이 너무 높아지면 사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방어책인 셈이다. 그는 “이를 통해 어느 시점에서든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투자자는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