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경영권 매각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주주들이 몸값을 둘러싸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해외 직구 업체 큐텐(Qoo10)의 제안 대로 2000억원대 후반에 경영권을 매각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나, 일부 주주들은 최소 4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한다며 매각에 반기를 들고 있다. 티몬의 경영권 매각 여부는 빠르면 이달 안에 결정될 전망이다.
◇ 큐텐, 경영권 인수 패 쥐자 기업가치 ‘반값’ 깎아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둘러싼 티몬 주주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번째 방안은 2800억~2900억원을 받고 큐텐에 경영권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다. 인수 대상은 최대주주인 몬스터홀딩스(81.74%), 티몬글로벌(16.91%) 등의 지분 전량이다. 몬스터홀딩스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이 2015년 티몬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티몬글로벌은 지난해 피에스얼라이언스(PSA), KKR, 앵커가 출자해 설립한 법인이다.
업계 관계자 상당수는 티몬이 10년째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큐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IB 업계에 따르면 티몬의 기업가치는 올해 초 58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실사에 참여했던 회사들이 발을 빼며 큐텐이 단독 협상자가 됐고, 패를 잡은 큐텐 쪽에서 티몬의 기업가치를 절반인 2900원 수준으로 대폭 깎은 것으로 알려졌다.
첫 투자 후 7년이 지난 KKR과 앵커도 티몬 지분의 매각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사모펀드는 펀드 운용 기간(통상 10년) 중 초기 5년 동안 투자하고 후기 5년을 회수에 할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2015년 티몬의 기업가치가 8600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2000억원대에 매각하면 KKR과 앵커가 큰 손해를 보게 되겠지만, 펀드는 전체 내부수익률(IRR)이 중요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사가 한 곳이라도 파산하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KKR과 앵커 입장에서는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티몬 경영권을 매각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부 주주들이 주장하는 두번째 방안은 경영권을 매각하는 대신 기업가치 4000억원을 인정 받고 1000억원을 투자 받는 것이다. 4000억원 역시 2015년 당시 기업가치의 절반이 안 되지만, 큐텐이 제시한 값보다는 40% 가량 높다. 손실을 어느 정도 줄이면서 구주를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티몬 주주들은 지분을 정리할 의사가 뚜렷하고 큐텐은 아직 인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빠르면 이달 중 결론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허탈한 티몬 직원들...대주주·현 대표 책임론
티몬 직원들은 한때 쿠팡과 함께 소셜커머스 시대를 이끌었던 회사가 헐값에 매각 협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주주가 지난 5년 간 최고경영자(CEO)를 4번이나 갈아치우면서 회사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티몬은 2015년~2017년 ‘업계 최초 서비스’를 연달아 내놓던 혁신적인 회사로 평가 받았다. 국내 이커머스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이커머스 생태계는 티몬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주요 회사 임원 중 티몬 재직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2015년 출시한 생필품 장보기 서비스 슈퍼마트는 1년 만에 연 매출 300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부킹닷컴과 손잡고 실시간 호텔 예약 서비스를 선보였고 2017년에는 현재 업계 전반으로 확산한 라이브 커머스(모바일 실시간 판매 방송)의 초기 버전인 티비온을 출시했다.
그러나 2018년 매출이 5000억원에 육박한 시점에 티몬 대주주가 돌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선회하면서 이 사업들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기 시작했다.
기폭제가 된 건 쿠팡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펀드 비전펀드에게서 2조원대 추가 투자를 유치한 일이다. 대규모 투자를 받은 쿠팡이 현재의 로켓배송을 도입하며 외형을 키우는 전략을 본격화 하자 티몬 대주주 측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은 2019년부터 슈퍼마트를 축소하는 등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섰다. 덕분에 영업적자가 2018년 말 870억원에서 2019년 말 770억원으로 줄었지만 이때부터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9년 말 1800억원대에서 작년 말 1290억원으로 역성장했다.
2021년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티몬 대주주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티몬은 신임 대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입지가 약해졌다. 대주주는 기업가치를 키울 만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작년으로 예정했던 상장도 연기했다.
작년 장윤석 대표가 취임했지만 위기의 티몬을 회생시킬 만한 적임자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 대표는 1978년생으로 이커머스 첫 개발자 출신 CEO다. 2013년 만든 모바일 콘텐츠 회사 피키캐스트로 유명해졌으나 이 회사 대표로 재직할 때 직원 임금, 퇴직금을 체불한 혐의로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티몬 취임 이후 직급을 폐지하고 근무 장소에 제약을 두지 않는 스마트&리모트 워크를 도입하는 등 조직 문화 혁신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사업 측면에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태다. 티몬의 한 직원은 “지금 이커머스는 2015년~2016년보다 치열한 전쟁터인데 어떤 사업모델로 티몬을 성장시킬 것인지 그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