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본격적인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것)’에 나서며 한국은행의 정책금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신흥국 국채는 우량 안전 자산인 미 국채에 비해 금리가 높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미 양국 간 금리가 역전될 경우 외국계 자본의 유출이 가속화해 우리 채권 시장은 물론 주식 시장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매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금융기관 간 초단기 대출금리) 운용 목표를 공표하기 시작한 1999년 5월 이후, 한·미 기준금리의 역전은 총 세 차례(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 걸쳐 나타났다. 세 번의 한·미 금리 역전기 중 외자가 대거 유출됐던 2005~2007년과 2018~2020년 외국인의 수급 동향을 살펴보면, 2005년에는 은행 및 금융주가 그나마 선방했으며 2018년에는 기술 성장주인 카카오와 실적이 대폭 개선된 기업들이 매도 공세에서 살아 남았다.
◇ 2005~2007년: 경기호황·인플레·원화절상에 금융株 선방
연준은 지난 4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5월 정례회의를 마친 뒤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기준금리는 기존 0.25~0.75%에서 0.75~1.0%로 상승했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이사회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두어 번의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0.5%포인트)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추가 빅스텝 계획을 시사했다. 만약 6월과 7월 FOMC에서 두 달 연속 0.5%포인트를 인상한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1.75~2.0%가 된다. 한국은행의 현 기준금리(1.5%)보다 0.25~0.5%포인트나 높아지게 된다.
한·미 기준금리의 역전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9일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나라는 성장이 미국 만큼 견실하지 못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듯, 미 연준의 빅스텝을 마냥 따라가긴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이어 중국의 대도시 봉쇄까지 매크로(거시) 여건이 악화해 경기 침체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전 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1.2%)과 비교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기준금리의 역전은 신흥국 증권시장에 악재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과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3번의 시기 중 1999년 6월~2001년 3월을 제외한 2번의 시기에 우리 증시에서 외국계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 사이에는 미국 기준금리가 3.43%에서 5.25%로 오르는 동안 우리 기준금리가 3.25%에서 5%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큰폭으로 올렸지만 연준의 속도가 워낙 빨랐다. 2000년대 초반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에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나자,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강력한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을 거둬들인 것이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2년 간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은 32조원 넘게 유출됐다. 개인의 비중은 미미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투자신탁과 연기금 등 국내 기관이 외국인 매물을 대부분 받아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동안 그나마 선방한 업종은 금융 및 은행업이었다. 외국인은 신한지주·외환은행·기업은행·우리금융·하나은행 같은 금융주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
이 시기 금융주의 상대적 선방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미 연준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한국은행도 금리를 큰폭으로 올린 만큼, 금리 인상기의 대표적인 수혜주인 금융주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크레딧(신용) 사이클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가 좋아지며 금리가 오를 때는 금융주가 수혜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경기는 2007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호황을 이어갔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당시 차이나플레이(중국 발 호재)로 인해 대출을 많이 일으키는 경기 민감형 산업이 좋은 실적을 냈다”며 “우리나라 금융주는 경기 민감주의 성격이 강해, 호황기에 외국계 자금을 많이 흡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상무는 이 시기 금융주의 강세가 전세계적 트렌드와 궤를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가계 대출이 급증하며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의 실적이 정점을 찍었듯 국내 은행들도 이익률과 자기자본수익률(ROE)이 오르는 시기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강남 아파트의 평당 평균 매매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초였던 2003년 1951만원에서 임기 말인 2008년 4069만원으로 상승했다.
외환 시장 역시 금융주에 우호적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는 동안에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하락(원화 가치가 상승)했다. 한·미 기준금리의 역전으로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자가 빠져나가긴 했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며 원화 절상이 나타났다.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 사이 원·달러 환율은 1038.50원에서 938.35원으로 9.6% 하락(원화 가치 상승)했다. 국내 금융주는 원화 절상의 수혜주로 꼽힌다.
◇ 2018~2020년: 인터넷 플랫폼 전성기…올해 전망은 엇갈려
2018년 3월과 2020년 2월 사이에도 미 기준금리는 한국은행 정책금리를 뛰어넘었다. 미 금리는 1.58~2.5%사이에서 등락한 반면 우리 기준금리는 1.25~1.75% 안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도 외국계 자금은 우리 증시에서 대거 이탈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 2년 간 14조원을 순매도했다. 이 때는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총 18조원어치를 사들이며 외국인의 매도세에 맞섰다.
2018~2020년에는 금융주보다는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된 대형주들이 외국인의 매도 폭격 속에서 살아 남았다.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하고 매 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큰폭으로 증가하던 카카오에 외국계 자금 1조4300억원이 몰렸다. SK하이닉스 역시 2017부터 지속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실적이 대폭 개선됐으며, 외국인 자금 1조1200억원을 흡수했다.
과거 두 차례의 한·미 기준금리 역전기에 외국인이 서로 다른 매매 패턴을 보인 것은 매크로 환경의 차이에 기인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5년은 중국 경제가 아주 잘 나가던 시기였던 반면 2018년은 차이나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던 때”라며 “2005년과 2018년을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또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 사이에는 원·달러 환율이 13% 가까이 상승하며 달러화의 강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우리 기준금리의 인상 폭이 0.5%포인트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국내 금융주가 수혜를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 상무는 “2018년은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의 전성기였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성장 기업들의 몸값이 많이 오른 시기였다”며 “원·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달러화 가치가 오르며, 국내 성장주를 ‘싸게’ 사려는 외국인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미 기준금리가 다시 한 번 역전된다면, 이번에는 어떤 종목들이 외국인의 매도 공세에서 선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윤 센터장은 “연초 이래 미국의 긴축 국면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조정 받은 종목은 나스닥시장의 성장주들이었다”며 “이제는 금융주를 비롯한 가치주가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직후에는 외국인의 매도세가 지속되겠지만, 미국 물가지수가 고점을 통과하면 원·달러 환율도 안정되고 외국계 자금이 기술 성장주에 다시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카오와 네이버뿐 아니라 현금 흐름이 좋으며 미래차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현대차 등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한·미 기준금리의 역전 자체가 외국인의 매매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 센터장은 “우리 시장 금리는 일본과 유럽 주요국에 비해 높은 축에 속해, 미국에 역전 당한다 해도 외국계 자금의 이탈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리 역전보다는 미국의 통화 정책 자체가 재작년부터 외국인의 순매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