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씩 인상하는 것)’ 및 고강도 양적 긴축 시사,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주식시장에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의 강세가 이어지며,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연일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우리 증시의 성적은 동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두 번째로 저조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주요 도시들을 전면 봉쇄했던 중국을 제외하면 코스피지수의 낙폭이 가장 크다. 증권가에서는 지난달부터 꾸준히 ‘코스피 저점론’이 힘을 얻으며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낙관론이 사라지는 분위기다.

그래픽=이은현

◇ 코스피·코스닥 하락률 10% 안팎…中 다음으로 부진

1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코스피지수는 9.7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만 자취안지수가 6.93%, 일본 니케이225지수가 7.54% 내린 것과 비교해 부진한 성적이다. 홍콩항셍지수도 7.55% 하락하는 데 그쳤다.

올해 동아시아에서 우리 증시보다 저조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국가는 중국뿐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11.59% 하락했으며,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9.81% 내렸다. 코스닥지수의 경우 10.93%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홍콩H지수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냈다.

우리 증시의 흐름이 동아시아 주요국 가운데서도 특히 부진한 이유는 먼저 재작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주가지수 상승률이 유독 높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코스피지수의 2020년 3월 저점 대비 작년 6월 고점까지 상승률은 110%가 넘었다. 같은 기간 자취안지수는 약 90%, 니케이225지수는 70% 오르는 데 그쳤으며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항셍지수는 30%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재작년 코스피지수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코로나19 방역, 가전 수요 증가로 인한 제조업 경기 활황에 힘입어 최고 13~14배에 달하는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을 기록했다”며 “이처럼 시장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인플레이션과 미 연준의 긴축이 맞물리며 증시의 상승 동력이 약해지니, 외국인들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증시가 여타 국가들과 달리 여러 매크로 악재에 동시다발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손주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는 미·중 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도 큰 나라이기 때문에 현재 증시를 둘러싼 모든 매크로 악재를 한꺼번에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금 전세계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이라며 “우리나라는 수출 제품을 만들 때 쓰는 각종 원·부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인플레이션 압력에 특히 민감하게 노출돼있다”고 설명했다.

◇ 대만 증시, TSMC 덕 상대적 선방…“반등 타이밍 보려면 삼성전자 주가 보라”

동아시아 주요국 중 증시 성적이 가장 양호한 대만은 TSMC가 전체 주식시장의 약 3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20% 안팎인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TSMC는 전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위 삼성전자와의 기술력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또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 반도체가 인플레이션 및 전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TSMC와 비교해 기업가치가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15% 넘게 하락하는 동안 TSMC는 10% 내리는 데 그쳤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파운드리 반도체는 이익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현재 수익성도 개선되는 상황”이라며 “반면 삼성전자는 이익 추정이 불확실한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높으며 가격 변동성이 큰 소비자 가전 완제품도 많이 판매하고 있어, 파운드리 반도체만 만드는 TSMC보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1·2위를 달리고 있는 대만 TSMC의 로고(왼쪽)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오른쪽). /EPA연합뉴스, 삼성전자

일본은 신흥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우리 증시와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산업 구조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원·부자재를 수출하는 대형 종합상사들의 비중이 높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일부 수혜를 보고 있으며 금융업 비중이 높다는 특징을 지닌다.

최 부문장은 “일본은 경제 성장의 둔화와 저금리가 큰 문제였던 만큼, 이 기회에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며 “게다가 엔화 가치도 큰폭으로 하락해 수출 기업들의 투자 매력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의 반등 시기를 가늠하려면 환율과 함께 삼성전자의 주가 추이를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금이 우리 증시에서 1년째 계속 순유출되고 있으며,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최근 10년 내 상위 2% 수준까지 높아진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긴 어려워, 결국 환율의 하락과 함께 코스피지수의 반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센터장은 “메모리 반도체 중 낸드(NAND) 업황은 개선됐으며, 디램(DRAM)은 하반기 들어 가격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며 “여전히 서버 수요가 견조하며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판매될 디램이 DDR4보다 40% 정도 비싼 DDR5이기 때문에, 중국 대도시 봉쇄 등 매크로 관련 불확실성이 낮아지면 삼성전자의 실적도 개선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