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이었다. LG화학(051910)의 배터리 부문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이 27일 상장 첫날 시가총액 118조원을 기록하며 국내 2위의 초대형 종목이 됐다. 다만 투자자들의 바람과 달리 ‘따상’은커녕 공모가(30만원)의 2배도 지키지 못했고, 50만5000원에 첫 거래를 마치며 68%의 수익률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은 개장 직후 59만7000원의 시초가를 형성했으나, 곧바로 하락 전환해 45만원까지 떨어졌다. 오후 2시가 넘어 상승폭을 키우며 54만원에 근접하기도 했지만 결국 50만원선을 가까스로 방어하며 장을 마감했다.

27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로비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초가를 확인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안상환 한국IR협의회 회장, 조상욱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대표이사, 임재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권영수 (주)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김성현 KB증권 대표이사, 이기헌 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 /한국거래소

◇ 미국 발 악재에 ‘따상’ 꿈 물거품…“43만원까지 떨어질 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총 140조원의 전망까지 나왔던 LG에너지솔루션이 체면을 구긴 이유는 공모주를 배정 받은 개인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 투자자는 LG에너지솔루션 주식 236만주(1조2397억원)를, 외국인은 268만주(1조3989억원)를 팔았다. 국내 증시 ‘큰손’인 연기금이 400만주(2조1084억원)를 쓸어 담았지만 주가 하락을 방어하긴 역부족이었다.

외국인의 보유 매물이 많이 나온 이유는 이들이 배정 받은 주식 대부분에 자발적 보호예수가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상장을 앞두고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외국계 기관은 총 1285만6250주를 배정 받았는데, 그중 72.9%에 달하는 937만7750주가 의무보유 미확약 물량이었다.

상장 첫날부터 매물이 대거 쏟아졌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추가 매도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총 1062만주가 배정됐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오늘 순매도된 주식 236만주를 제외하면 여전히 800만주가 남아 있는 셈이다. 국내외 기관 투자자의 의무보유 미확약 물량 역시 총 974만주에 달한다. 아직 기관이 팔 수 있는 물량이 많이 남아 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예상보다 매파적인 발언이 나오며, 투자자들이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공모가에 비해서는 주가가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일단 정리해 매각 차익을 얻겠다는 심리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은 26일(현지 시각) FOMC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노동 시장을 위협하지 않고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여지가 꽤 크다”며 “조건이 무르익는다면 3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발 악재에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출렁였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94.75포인트(3.5%) 빠지며 2614.49로 마감했고, 일본 니케이225 역시 3% 넘게 떨어졌다. 상하이종합지수는 1.78% 하락 마감했으며 홍콩항셍지수는 2% 넘게 내리고 있다.

최 부문장은 “무역수지가 흑자를 낸 것이 그동안 우리 증시에 큰 호재로 작용해왔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며 기업의 펀더멘탈(기초체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주가지수가 전 고점 대비 20%가량 떨어진 상태”라며 “LG에너지솔루션 주가도 43만~45만원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LG엔솔, 내일 코스피 편입돼도 지수에는 별 변화 없어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자마자 118조1700억원의 시총을 기록하자, SK하이닉스(000660)는 약 5년 2개월 만에 2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6년 11월 한국전력(015760)을 제치고 시총 2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으로 SK하이닉스는 물론 시총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 역시 주가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연기금은 이날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2조원어치 이상 사들였는데, 그 대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각각 609억원, 1776억원 순매도했다.

이 때문에 코스피지수의 급락에 LG에너지솔루션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주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다른 시총 상위 종목들에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 LG에너지솔루션으로 이동했는데, 오늘자 코스피지수에 LG에너지솔루션은 아직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낙폭이 과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내일부터 LG에너지솔루션이 코스피지수에 편입돼도 지수에는 별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한국거래소의 지수 산출 공식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현 시점의 시가총액’을 ‘기준시점(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한 값이다. 그런데 새로운 종목이 상장해 현 시점 시가총액이 늘어나면 분모에 해당하는 ‘기준시점의 시가총액’도 조정된다. 새 종목의 상장으로 주가지수가 지나치게 오르는 왜곡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국거래소의 지수 산출 공식에 LG에너지솔루션의 오늘 종가를 적용해 계산해보면, LG에너지솔루션의 편입을 반영한 코스피지수는 2614.70이다. 오늘 코스피지수 종가(2614.49)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KB증권 한 지점에서 고객들이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거래량 1580만주 넘으며 대체 거래 시스템·MTS에 오류도

한편,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 거래량이 급증하며 전산 시스템에 일시적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일일 주식 거래량은 1580만주를 넘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장 직전 KB증권의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며 계좌 간 대체 거래에 일시적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KB증권은 개인 공모주 물량이 가장 많았던 증권사로, 타 증권사 계좌로 공모주를 옮기는 과정에서 시스템 과부하가 걸렸던 것으로 예탁원은 추정했다.

다만 KB증권 측은 예탁원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입장이다. KB증권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로 인출, 대체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탁원과 KB증권 측 입장 차이는 현재까지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도 과부하로 인한 장애가 나타났다. 장 시작 후 40분 간 하이투자증권 HTS의 접속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