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의 유임안이 결정됐다. 파월 의장은 향후 4년 더 미 연준을 이끌며 세계 금융 시장의 방향 키를 쥐게 됐다. ‘파월호’ 2기가 출범함에 따라, 연준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등 금융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일관성과 안정성을 얻게 됐다.

치솟는 물가를 안정화하는 것은 현재 연준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될 긴축적 통화 정책은 우리 증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테이퍼링이 내년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 2014년 테이퍼링 당시 코스피지수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고 현 상황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 시장이 과거 한 차례 테이퍼링을 경험하며 학습 효과를 얻은 만큼, 전문가들은 이번 테이퍼링이 그 자체로 증시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과거와 달리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 간 시차가 짧을 것이라는 전망은 우려할 만한 요소다.

그래픽=이은현

◇ 2014년 테이퍼링, 갑작스런 예고에 국내 증시 직격탄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지난 2013년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테이퍼링 예고 이후 급락했다. 당시 버냉키가 의회 증언을 통해 수개월 안에 테이퍼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자 신흥국인 우리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 해 5월 22일 1993을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약 한 달 뒤인 6월 25일 1780.63까지 10% 넘게 떨어졌다.

당시 연준은 매달 85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는데, 버냉키의 이 같은 선포 이후 점진적으로 매입 규모를 줄여나갔다. 채권 매입 규모는 2014년 1월부터 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마다 100억달러씩 감소했으며, 테이퍼링은 같은 해 10월 공식 종료됐다.

통상 신흥국 증시는 선진국의 테이퍼링 시기에 하방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세계 곳곳에 풀린 달러화를 회수하면, 신흥국에서는 자금 유출이 일어나며 미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 환율이 급등(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피지수는 테이퍼링이 실시되는 동안 등락을 거듭하며 점진적으로 우상향했다. 2014년 2월 초 1885.53을 기록했던 코스피지수는 7월 말 2100선 턱밑까지 올랐다. 6개월간 주가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였다. 외국인은 이 기간 8조4000억원어치를 사들였는데, 긴축 시기의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주보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많이 매수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012년 유럽 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 자본 시장을 휩쓴 데 이어, 2013년에는 버냉키의 테이퍼링 예고로 시장의 우려가 국내 증시에 선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테이퍼링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2014년 초에는 이미 코스피지수의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저가 매수가 유입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당시 테이퍼링은 금융 시장에서 생소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처음 버냉키의 발언이 나왔을 때 증시가 격하게 반응했던 것”이라며 “이후 시장 참여자들이 테이퍼링을 ‘시장에 돈을 푸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부터 코스피지수가 다시 안정을 찾고 반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이번 테이퍼링, 종료 직후 금리 인상 뒤따를 것”

이번 테이퍼링은 2014년 이후 약 8년 만에 다시 시행되는 것이다. 지난 3일(현지 시각) 연준은 테이퍼링 개시를 공식 발표했다. 현재 매달 120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주택담보증권(MBS)을 매입하고 있는데, 이 규모를 11월에는 1050억달러로, 12월에는 900억달러로 줄이기로 했다.

다만 이번 테이퍼링은 올 초부터 꾸준히 언급돼온 데다 지난 6월 역레포 금리를 올리는 방법으로 실시된 적이 있는 만큼, 금융 시장은 8년 전처럼 요동치지 않았다.

역레포란 연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회수하겠다는 합의 하에 금융 상품을 머니마켓펀드(MMF)나 은행 등에 맡기고 현금을 가져가는 것이다. 즉, 시중의 현금이 중앙은행인 연준에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연준은 올해 6월 FOMC에서 역레포 금리를 올림으로써 초과 유동성을 흡수했는데, 정 본부장은 이를 테이퍼링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과거의 테이퍼링으로 인한 학습 효과도 생겼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13년 당시 테이퍼링 발표로 금리 발작(탠트럼)이 일어났던 것은 중앙은행의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인한 혼란 가중 때문이었다”며 “테이퍼링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도가 높은 현재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테이퍼링 종료 직후 이른 시일 내에 기준 금리 인상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은 우려할 점으로 꼽힌다. 2014년에는 테이퍼링을 종료한 후 약 1년 뒤 기준금리를 올렸다면, 현재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워낙 높은 만큼 테이퍼링이 끝나는 동시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화통신연합뉴스

강 연구위원은 “2014년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 대립이 격해지며 재정 확대가 빠르게 줄고 경제 성장 속도가 낮았다면, 내년에는 미국의 경제 성장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상회하고 물가 상승 속도도 빠를 전망”이라며 “과거처럼 테이퍼링 종료 후 상당 기간을 기다렸다가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테이퍼링은 내년 6월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오 센터장은 “현재 금융 시장의 전망치에 따르면 연준은 내년 6월 이후 연말까지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 기준금리를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내년 중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을 연달아 실시한다면 우리 증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증시 전문가들은 이 경우 우리 증시가 불가피하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강 연구위원은 “고물가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다면, 올해 초와 같이 국채 장기물 금리가 급등하고 성장주가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2차전지와 반도체 등 성장주는 국내 증시를 이끌어가는 주도주다. 성장주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주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 밸류에이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완화가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는 있다. 오 센터장은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가 유통돼 확진자가 급감하게 되면, 코로나로 인한 변동성 리스크가 낮아지고 그동안 큰 폭으로 하락한 신흥국 증시가 재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