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장인 김홍진(가명·33)씨는 이사 준비를 하던 중 부모님 이름으로 된 한국전력(015760) 실물 종이주식(종이로 인쇄된 증권) 10주를 발견했다. 본인이 부모님 대신 주식을 거래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던 김씨는 일부 지인들로부터 종이증권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의아했다. 종이증권을 전자증권으로 바꾸고 나면, 남은 실물은 사실상 가치가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해서다.

최근 김씨 등을 대상으로 이미 전자화된 종이증권을 사 모으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 옛날 기념우표나 주화, 골동품과 같이 회소 가치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9년 상장주식, 채권 등 증권을 실물 없이 전자로만 거래하도록 의무화하는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되면서 종이증권은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 증권사 계좌가 없어 자동으로 전자 등록되지 않은 종이증권은 본인이 실제 소유자이거나 명의대행서가 있으면 전자화할 수 있다.

1987년 3월에 발행된 최초의 국민주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실물주권(종이로 인쇄된 증권).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 제공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전자증권 의무등록 대상 주식 중에서 아직 종이증권으로 남아있는 주식은 3억7만주로 전체 0.33% 수준이다. 2019년 전자증권제도 도입 당시 7억9000만주 정도가 종이증권으로 남아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 동안 4억주 이상은 전자증권으로 전환됐다는 뜻이다. 전자증권 의무등록 대상 주식에는 종이증권 외에도 아예 수령하지 않은 미수령 주식이 있다.

숨어 있는 종이증권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에 발맞춰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주식 투자 커뮤니티 등에는 종이증권 거래 관련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비상장주식을 비롯해 종이증권을 ‘가치 없는 주식’이라고 명시하면서 구매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1970년대에 발행된 종이증권 약 100장을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경우도 있다. 목적은 골동품 수집, 선물, 소장 등으로 다양했다.

종이증권 대부분은 1980년대 말에 발행된 한국전력, 포항종합제철(현 POSCO), KT(030200) 등 국민주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증권을 대중화하고, 서민들의 재산 형성을 돕겠다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민주 공모를 시작했다. 1988년 상장할 당시 포스코 주식을 배정받은 개인은 322만명, 한전 주식을 받은 개인은 543만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레트로 열풍이 불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예전에는 버렸을 물건을 수집하고,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며 “종이증권에 대한 거래도 우표나 엽서 수집과 비슷한 차원이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가 되면 가치가 높아져서 판다는 것보다도 보유하고, 소장하는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탁원은 지난달 1일부터 이날까지 약 한 달 동안 본인 명의로 배정된 미수령 주식과 종이증권 내역을 조회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이 종이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어버렸거나, 전자증권 등록 절차가 간단하지 않아서 포기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서다. 현재 예탁원을 포함해 종이증권을 전자증권으로 바꿔주는 명의개서대행기관은 국민은행, 하나은행 세 곳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사실 증권사 계좌가 있으면 상장사 주식 대부분은 자동으로 전자화돼 입고됐다”며 “아직까지 전자화되지 않은 종이증권을 들고 있는 일반인은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 이름으로 명의를 개설하거나, 실물을 소지하지 않고 장부 상에만 등록된 주주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시중에 남아 있는 종이증권을 통계보다 더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 은 거래시장에서도 종이증권을 찾는 개인들이 많아졌다. 다만, 주식과 달리 금, 은 종이증권은 현물과 동일한 가치로 거래된다는 점이 다르다. 금, 은 종이증권은 부가가치세나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골드바나 실버바 현물 가격보다 10% 정도 저렴하다. 현물보다 보관이나 현금화가 용이하다는 게 금, 은 종이증권을 매매하는 민간 금 거래소 측 입장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종이증권만 계속 매매한다면 상관없겠지만, 행여라도 실물로 교환할 때 부가가치세, 출고 수수료가 붙는다”며 “가격적인 리스크를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발행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신용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개인 간의 교환권 거래 정도로 본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받거나 구제받을 방법이 모호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