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가 2000억원을 투자한 뤼이드,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운영하는 버즈빌,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체 샌드박스네트워크,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채널브리즈), 8월 중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모바일 헤드헌팅 업체 원티드랩, 자산 관리 스타트업 뱅크샐러드, 뇌졸중 환자들을 겨냥한 재활 전문 헬스케어 업체 네오펙트···.

모두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회사들이다. 이들 기업은 벤처 업계에서 향후 기업 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으며, 각 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1위 업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회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변준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37)가 투자한 회사라는 점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변 이사는 2013년 말 컴퍼니케이에 합류해 20여 개 기업에 투자했다. 현재는 컴퍼니케이의 파트너 5명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변 이사가 유일한 30대 파트너로, 나머지 네 명은 모두 50대다.

변준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제공

지난달, 서울 삼성동 컴퍼니케이 사무실에서 변 이사를 만났다. 그는 최근 여러 건의 투자를 검토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대표펀드매니저를 맡아 새 벤처 펀드를 결성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파트너로 승진했지만, 투자 심사 보고서를 모두 직접 작성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등 업무 내용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벤처캐피털(VC)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는지.

“2009년 카이스트에서 경영공학 석사까지 마친 후 한국신용평가의 자회사인 KIS채권평가에서 3년 간 병역 특례 복무를 했다. 복무를 하며 앞으로 뭘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마침 그때가 모바일 산업이 한창 무르익으며 티켓몬스터(티몬) 등 젊은 창업가가 세운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아 성장하던 시기였다.

나는 당시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내 전문성을 살리면서 창업 생태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VC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때마침 솔본인베스트먼트가 신입 심사역 채용 공고를 냈고, 감사하게도 20대의 나이로 합격해 벤처캐피털리스트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투자 심사역이 돼보니 어땠나.

“사실 처음에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1년간 심사역으로 일해보니 나와 창업가들은 DNA 자체가 다르더라. 훌륭한 창업가들은 창의적이며 위험(리스크)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직방만 해도 2010년 법인을 설립한 후 5년이 지나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많은 어려움을 겪고도 버텨내는 사람만이 창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업가들이 영화의 주연 배우라면, 나는 조연 혹은 단역 배우다. 많은 회사에 투자해 ‘다작’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도 투자한 회사들을 통해 그들의 사업을 간접 경험한다는 점에서, 많은 영화를 빛내는 조연 배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배우 유해진 같은 ‘흥행 요정’이 되는 게 투자 심사역으로서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변준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가 투자 심사역이 된 후 처음 투자한 회사다. 최근 GS홈쇼핑의 투자를 받았다. /메쉬코리아 제공

심사역으로서 가장 먼저 투자한 회사가 어디였나.

“유통 물류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였다(올해 GS홈쇼핑의 투자를 받았다). 2013년 기업 가치가 매우 낮을 때 기관 투자자로서 최초로 13억원을 투자했다. 지인을 통해 창업 멤버를 소개 받았는데, 워낙 실력 있는 팀인데다 배송 대행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투자를 결정했다.”

2013년 컴퍼니케이로 옮겼는데, 다음 해인 2014년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한 해였겠다.

“뜻깊은 한 해였다. 그 해에 네오펙트와 직방, 리디북스에 초기 투자를 했는데 세 회사가 모두 ‘대박’이 났다. 네오펙트에는 5억원을 투자해 상장으로 8배의 수익을 냈다. 직방은 10억원을 투자했는데, 해당 벤처 펀드가 청산되며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해 20배를 벌었다. 리디북스에는 35억원을 투자했고, 아직 엑시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기업가치가 10배 넘게 오른 상태다.”

네오펙트와 직방을 모두 한 펀드에서 투자한 건가.

“두 회사 모두 ‘컴퍼니케이 방송정보통신전문투자조합’이라는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내부 수익률이 20%를 넘었다. 펀드 결성 당시 규모가 100억원이었는데 청산 당시에는 320억원이 됐다. 그 중 내가 심사한 투자 건으로 얻은 수익이 250억원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연봉이 공개됐더라. 작년에 약 6억원을 받았다고 나오는데, 이 펀드의 청산과 관련 있는 건지.

“VC에서 펀드 청산을 통해 수익을 내면, 투자 성과급은 2~3년에 걸쳐 나눠서 지급한다. 네오펙트와 직방 투자 덕에 성과급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공시 대상이 됐다.”

네오펙트의 ‘스마트 재활 글러브’를 착용한 환자가 모니터를 보며 재활 훈련을 하고 있다. 변준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는 네오펙트에 초기 투자해 8배의 수익을 냈다. /네오펙트 제공

네오펙트, 직방, 리디북스 모두 결과적으로 잘 된 회사들 아닌가. 이 회사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경험이 풍부하면서 훌륭한 창업가들이라는 점이다.

네오펙트 대표이사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미국에서 창업을 경험해보고 나서 뇌졸중 환자들을 위한 재활 헬스케어를 창업했다.

직방의 안성우 대표는 엔씨소프트에 근무하다 회계사도 돼 보고, VC인 블루런벤처스에서 일하다 창업까지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창업가로서 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많이 쌓은 것이다.

물론 경력만으로 훌륭한 창업가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성공한 창업가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생각이 정말 깊이 있고 배울 점이 많다.”

‘훌륭한 창업가’의 기준은 상당히 애매한 것 같다. 정성적인 기준이겠지만, 그럼에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지.

“너무 과장해서 자신이나 자기 사업을 과신하지 않고, 꼼꼼하면서도 리더십이 있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팀도 중요하지만, 대표이사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대표가 좋은 인력들을 끌어오니까 말이다. 리더인 대표가 직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직원들도 회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 같다.

훌륭한 창업가들은 또 책임질 수 있는 약속만 하고, 신뢰가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알맹이는 없이 ‘누구와 친하다, 누구를 안다’는 식의 자랑만 늘어놓는 창업가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도 훌륭한 창업가의 특징이다. 예측이 가능한 사람은 갑자기 생뚱맞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표이사의 ‘인품’도 중요하다는 뜻 같은데, 인품이 좋지 못한 창업가의 회사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투자사 입장에서는 높은 투자 수익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는 창업가와 7~8년, 길게는 10년 이상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하는데, 그동안 분명히 안 좋은 일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인품이 좋지 못한 분들은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분쟁을 일으키고 머리 아픈 상황을 야기한다.”

창업가 외에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아직 개화하지 않은 산업 안에서 1등을 하는 회사를 유망하게 본다.

직방의 경우 내가 투자할 때는 월 매출액과 이용자 수가 현재의 5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 자체가 작았지만, 그래도 모바일 부동산 플랫폼 중 분명한 1위 업체였다. 리디북스 역시 내가 투자할 당시에는 월 매출액이 10억원 수준이었다(현재는 150억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그때 이미 전자책 시장에서 1위 기업이었다.

덜 성장한 시장에서 1등 업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투자 결정 요소다. 시장이 커지면, 그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기업이 바로 1등 회사이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말할 것도 없고 배달의민족, 쿠팡도 그렇지 않았나.”

아직 개화하지 않은, 성장 가능한 산업을 알아본다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그보다는 해당 산업의 1등 기업에 투자하기 훨씬 더 어렵다. 1등 회사가 투자를 유치하는 시기에 그걸 알고 투자한다는 게 쉽지 않다. 잘 나가는 회사는 투자 유치를 수시로 하지 않고, 아무리 빨라야 1년 반~2년에 한 번씩 한다. 게다가 매 투자 라운드마다 몸값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사들이 투자를 유치하는 시기에 내가 옆에 있다가 투자 기회를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1등 회사들은 절대 투자사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성장성이 보이지 않는 산업이란 어떤 산업인가.

“일례로 2014년 가상현실(VR) 관련 기업이 많이 등장했을 때, 나는 아직 성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 투자하지 않았다. VR 기기의 보급률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기기 보급률이 50%가 넘으면 가장 좋겠지만, 20~30%만 돼도 투자를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지금도 VR의 성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여전히 보급률은 낮지만, 기기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더라.”

투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나.

“뤼이드에 투자하기까지 상당히 어려웠다. 회사 내부에서 뤼이드가 교육 스타트업으로서 유망할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뤼이드는 AI를 기반으로 한 토익 학습 플랫폼 ‘산타토익’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뤼이드가 교육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뤼이드의 정체성은 AI엔진 개발 업체다. 과거 토익 공부를 할 때 예상문제 1000제를 풀어야 했다면, 뤼이드의 서비스는 빅데이터 딥러닝을 통해 이용자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지 골라주기 때문에 학습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산타토익은 단지 뤼이드의 AI 엔진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서비스다.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미국과 남미, 중동에서 이 엔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객사들이 AI 엔진을 활용한 서비스로 돈을 벌면, 그 수익의 일부와 로열티를 뤼이드에 지불한다. 이처럼 뤼이드는 기술 장벽이 높은 소프트웨어 엔진 회사다. 이 점을 우리 회사 투자심사위원회에 열심히 설득했고, 결국 2018년에 21억5000만원을 투자할 수 있었다. 현재 기업가치는 그때의 약 20배가 됐다.”

2019년 변준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와 피투자사 대표들이 일본에 출장가서 촬영한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현 펀플웍스 대표,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 변준영 이사, 장영준 뤼이드 대표, 이관우 버즈빌 대표. 장영준 대표는 이 출장에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만나 미팅을 했다. /변준영 이사 제공

뤼이드에 투자한 돈은 회수했는지.

“단 한주도 팔지 않았다. 비전펀드가 투자함으로써 회사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AI 엔진의 공신력과 신뢰도가 높아지면, 회사는 급속도로 더 성장할 수 있다. 실제로 비전펀드의 투자 유치 이후 고객사들의 문의가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

투자 심사뿐 아니라 펀드 결성도 직접 하는지.

“2015년 초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심사역으로서 더 성장하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펀드 출자자(LP)를 대상으로 영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른두 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반대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한 번 시도해보라는 답을 받았다. 2016년에 처음 LP 유치를 시작했고, 2018년에는 회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LP를 유치했다.”

LP와 피투자사를 상대할 때 다른 점이 있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피투자사나 LP 모두 내겐 중요한 고객들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소개팅을 통해 만난 남·녀 사이와 비슷한 것 같다. 만남을 이어가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된다.”

LP나 피투자사와의 관계가 잘 안 풀리면 어떻게 하는지.

“(그 딜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딜에 모두 참여할 수는 없다. 다른 좋은 회사에 투자하면 된다. 또 내가 투자를 더 잘해서 좋은 트랙레코드(실적)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좋은 LP들을 유치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변 이사가 ‘뜰 만한’ 산업을 잘 안다고 평가하더라. 앞으로는 어떤 산업이 뜰 것 같은가.

“정작 나는 한 번도 산업을 먼저 보고 투자한 적이 없다. 좋은 창업가와 팀을 찾아가보면, 그들이 하는 사업이 대부분 유망하고 성장성이 크더라. 창업가들은 인생을 걸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산업과 시장을 나보다 훨씬 잘 본다. 내 일은 좋은 창업가를 만나고 그들이 하는 사업의 성장성을 알아보는 것이다.”

일주일에 보통 몇 건의 투자를 검토하는지.

“일주일에 1~2개 정도다. 실제로 투자하는 기업은 일 년에 4~5개다.”

VC에 입사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

“VC가 큰돈을 벌 기회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입사한 후 실망할 수도 있다. 입사 후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좋은 투자를 하기까지는 아무리 짧아도 2~3년이 걸리는 것 같다. 투자 후 회수까지는 평균 5~6년이 걸린다.

즉, 투자 심사역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최소 7~8년이 소요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 사이에서 호흡하며 일하는 것이 잘 맞는다면,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진지하게 검토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