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6일) 잠실의 끝내기 순간이다. 4-4 동점이던 9회 말 공격. 트윈스가 1사 만루에서 구본혁의 홈런으로 8-4로 승리했다. 극적인 승부였다. 그런데 이 순간 옥에 티가 있었다. 마치 명작 드라마나 영화의 NG 컷 같이 숨어 있는 장면이다.

SPOTV 중계 화면을 캡처했다.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다.

①     1루 주자 김현종이 홈으로 들어간다.

②     KT 포수 장성우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③     홈에서 환영 기다리던 오지환이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킨다.

④     영웅 구본혁을 에워싸고 감격의 포옹과 물뿌리기로 세리머니가 마무리된다.

사건은 김현종에서 시작된다. 오타니 못지않은 바른 생활이 문제였다. 홈으로 가는 길에 놓인 배트 하나가 거슬린다. 구본혁이 던져 놓은 만루홈런의 흔적이다. 혹시나 승리의 주역이 흥분해서 밟으면 안 된다. 친절하게도 한쪽으로 가지런히 치워놓는다.

하지만 아뿔싸. 그러느라 홈 밟는 걸 빼먹었다. 하긴 뭐. 이런 감격스러운 상황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아무렇지 않게, 무척 자연스럽게. 격한 환영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 장면은 바로 옆에 있던 상대 포수의 시야에 잡힌다. 장성우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또 있다. 캡틴(오지환)이다. 열광하는 와중에도 놓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홈 플레이트를 가리킨다. 그러나 경황 중이다. 모두가 애써 모른 척하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누의 공과(壘의 空過ㆍmissed base)다. 베이스(혹은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는 뜻이다. 급하게 달리다가, 또는 어리숙한 플레이 때문에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이 경우 진루는 무효가 된다. 해당 주자는 아웃으로 처리된다. 혼자만 손해보는 게 아니다. 그 뒤에 있는 주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공과 시점 이전의 진루만 인정된다.

어제(6일) 경기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김현중이 홈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7점째 득점부터 취소돼야 한다. 구본혁은 공과 전에 점유한 3루까지만 진루권이 주어진다. 즉, 그 타구는 홈런이 아닌 3루타로 기록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만약 ‘누의 공과’ 판정이 내려졌으면, 최종 스코어는 8-4가 아닌 6-4가 된다. 구본혁의 개인 기록도 끝내기 만루 홈런이 아닌, 끝내기 3루타로 정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의 공과는 어필 플레이다. 즉, 수비 쪽에서 이의 제기가 우선돼야 한다. 베이스 리터치, 타순 착오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단의 연결된 플레이가 모두 종료된 이후다. 이때 수비 쪽이 심판에게 ‘누가, 어떤 베이스를 밟지 않았다’고 항의(어필)해야 한다. (혹은 그 베이스에서 포스 아웃이나 태그 동작을 취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심판이 사전에 알았더라도 판정할 수 없다. 일종의 경기 개입으로 간주한다.

단, 예외는 있다. 끝내기 상황이다. 만약 끝내기 주자가 공과를 범했을 경우, 심판은 어필이 없어도 독자적인 판단으로 판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제의 경우 3루 주자였던 홍창기가 이런 식으로 홈을 밟지 않았다면 상황은 아찔해진다.

홍창기는 아웃으로 처리된다. 이후 모든 득점은 취소된다. 나머지 주자들은 모두 다음 베이스까지만 진루권이 주어진다. 스코어는 4-4 그대로, 1사 만루가 2사 만루로 바뀔 뿐이다. 구본혁의 타구는 홈런도, 안타도 아니다. 좌측 담장을 넘어간 땅볼로 정정된다.

물론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끝난 마당이다. 어필해도, 승부는 바뀌지 않는다. KT의 팀 실점이나, 박영현의 자책점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다. 그걸 위해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다. 꼼꼼함은 중요하다.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긴다. 프로야구에서는 그동안 36번의 사고(누의 공과)가 일어났다. 얼마 전 서울 시리즈에서도 오타니가 본헤드 플레이를 자책했다.

KBO 리그에서 누의 공과로 끝내기 상황이 뒤바뀐 적은 없다. 고교 야구에서는 2016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한차례 기록됐다. 3-3 동점이던 13회 말이었다. 휘문고 3루 주자가 홈을 밟기도 전에, 팀원들과 부둥켜안고 기뻐한 것이 문제였다. 군산상고 측의 항의로 득점은 무효가 됐다. (다음 타자의 희생플라이로 경기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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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백종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