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 서울중앙지법 제60민사부는 글로벌 제약사인 와이어쓰LLC(이하 와이어쓰)와 한국화이자제약(이하 화이자)이 SK바이오사이언스(이하 SK바이오)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토종백신 스카이뉴모프리필드시린지(스카이뉴모)를 옭아맨 ‘특허 족쇄’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글로벌 제약사의 특허장벽을 뚫어라

SK바이오는 와이어쓰의 13가 폐렴구균 백신인 ‘프리베나13’과 구성이 동일한 스카이뉴모를 개발해 2016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획득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첫 폐렴구균 백신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스카이뉴모는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특허장벽에 가로막혔다. 전 세계 폐렴구균 백신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프리베나13과의 특허분쟁에 휘말린 것이다. 프리베나13 특허권자인 글로벌 제약사 와이어쓰와 프리베나13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화이자가 스카이뉴모가 자신들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2017년 소송을 제기했다. 와이어쓰와 화이자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했다.

일러스트=박길우

토종백신을 시장에 내놓으려는 SK바이오의 노력은 글로벌 제약사와 김앤장의 연합에 막혔다.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6월 와이어쓰의 손을 들어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프리베나13 특허 존속기간인 2026년까지 SK바이오가 스카이뉴모를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견고해보였던 특허장벽에도 작은 빈틈은 있었다. SK바이오는 특허분쟁이 진행 중이던 2018년 2월 러시아 제약사 A사와 스카이뉴모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와이어쓰가 프리베나13 특허권을 등록하지 않은 국가였다. SK바이오는 기술이전계약에 따라 2018년과 2019년에 세 차례에 걸쳐 A사에 임상시험 및 분석시험을 위한 스카이뉴모 완제품을 제공했다. 비록 국내시장에서 판매되지는 못했지만 토종백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자 와이어쓰와 화이자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두 회사는 SK바이오가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2020년 6월 또다시 특허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앞선 법적 공방에서 와이어쓰와 화이자가 모두 이겼기 때문에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SK바이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화우가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를 들고 나오면서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를 둘러싼 공방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는 연구 또는 시험을 하기 위한 특허발명의 실시에 한해서는 특허권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화우는 SK바이오가 A사에 제공한 스카이뉴모 완제품은 A사의 임상시험을 위한 것인만큼 연구 또는 시험을 위한 목적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화우는 SK바이오가 A사에 제공한 스카이뉴모 포장 및 용기 표면에 ‘For Research Purpose Only(시험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라고 표시한 것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용기 표면에 제품명이나 효능, 효과 등 완제의약품으로 판매되기 위한 필수사항도 전혀 기재하지 않아 러시아 시장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확인시켰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러시아 A사에 보낸 스카이뉴모 제품. 제품 포장에 ‘For Research Purpose Only’를 명시해 놨다.

반면 와이어쓰와 화이자를 대리한 김앤장은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는 국내에서 이뤄지는 실험에 한해 적용되는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조항은 특허발명 그 자체에만 적용해야 하고, 상업적 목적이 개재되는 경우에는 적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A사의 임상시험은 상업적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화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특허법 96조 1항 1호의 적용을 위해 연구 또는 시험이 특허성의 실증이나 기술 개량의 목적으로 한 경우 비상업적 목적으로 한정돼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A사가 러시아에서 프리베나13의 제네릭 약품의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SK바이오에게 공급받은 완제 의약품을 이용하는 행위는 국내 약사법상 품목허가를 위해 실시제품을 생산해 시험에 사용하는 행위와 차이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특허권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등록국 내에서의 실시행위에 대해서만 미치고, 우리법제에서는 해외에서 실시를 특허침해로 규율하는 규정이 없다"면서 "해외에서의 실시행위에 대해 국내 특허권자가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토종백신인 스카이뉴모를 둘러싼 법정공방에서 처음으로 SK바이오가 웃는 순간이었다.

◇골리앗 꺾은 바이오 특허 전문가 권동주 변호사

글로벌 제약사와 김앤장이라는 골리앗 연합을 무너뜨린 주역은 법무법인 화우의 권동주 변호사(사법연수원 26기)다. 권 변호사는 판사 중에서 최고의 지식재산권(IP) 전문가들만 모이는 대법원 지적재산권조 재판연구관으로 2년 동안 활동했고, 특허법원 대등재판부 판사로도 활동했다. 법관 해외연수에서도 미국 버지니아로스쿨에서 지식재산권에 관한 연구로 LLM 학위를 취득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권동주 변호사.

2018년 법복을 벗은 뒤 화우에 자리잡고 지식재산팀과 헬스케어팀을 맡고 있다. 대형로펌의 헬스케어팀은 김앤장과 광장이 유명한데, 권 변호사가 화우에 헬스케어팀을 만들면서 SK바이오 뿐만 아니라 코오롱생명과학, 메디톡스 등 국내 제약사들이 화우와 손을 잡게 됐다.

권 변호사는 국내 제약사와 함께 글로벌 제약사의 특허장벽에 맞서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뉴모의 해외 기술이전이 가능해졌다”며 “글로벌 제약사의 특허공세에서 국내 제약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