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학제적 접근 방식 개인맞춤형 정밀의료 필요"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마음 통증을 덜어줘야"

정상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장.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아픈 사람’입니다. 병원은 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서적·사회적 관계 회복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정상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장(유방외과 교수)은 "진료에만 집중하는 병원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환자가 주인이 되는 암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주인이 되는 암병원이란 어떤 곳일까. 지난 24일 정 병원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암병원은 어떤 곳인지 들었다.

후마니타스(Humanitas)는 라틴어로 ‘인간다움’을 뜻한다. 경희대는 ‘후마니타스’를 병원에 접목, 암병원 명칭으로 정했다.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가장 큰 질병은 암이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개원한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은 개인별 맞춤진료 정밀의학을 시작으로 암종별 다학제 진료팀을 구성해 각 분야 최고 수준의 의료진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암병원은 최적의 암 치료뿐 아니라 ‘심리적 지지’를 돕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후마니타스암병원은 병동에서 ‘고잉 온 다이어리’ 전시회를 열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외롭게 암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암 환자 18명이 모바일 일기 애플리케이션(앱) ‘세줄일기’를 활용해 주어진 주제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써내려 간 글과 사진이다. 전시회 기획자인 정상설 암병원장은 "정서적으로 지지가 필요한 암 환자들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이 프로그램처럼 암 발병 후에도 아름다운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도입에 힘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 병원장은 환자를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1시간씩 시간을 내 ‘마음 나누기’ 클리닉이라는 것을 만들어 상담을 진행한다. 그는 "대학병원 여건상 환자를 위해 쓰는 시간이 제한적이어서 환자가 직면한 문제를 모두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들이 실제 직면한 고충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환자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됐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정 병원장은 "코로나19로 지난해 7월부터 영상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비대면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이 암병원 1층 로비에서 ‘고잉 온 다이어리’ 전시회를 개최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100세 시대,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무수한 병을 극복해왔지만 아직도 암 정복의 길은 멀었다. 오래전부터 암 치료 대안 모색을 위한 연구들이 진행됐고, 그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정밀의학’이다. 정 암병원장은 "병은 같아도 환자는 다르다"면서 "여러 시각에서 도출된 최적 치료법을 통해 환자에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에게 어떤 치료법이 맞는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생활습관 등을 알아내는 방대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전 암 수술은 대부분 외과적 수술 관점에서 접근했다. 대부분 암 조직과 암이 전이된 주변 조직을 최대한 많이 떼어내는 광범위한 절제술이었다. 암을 제거했으니 완치율은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재발이나 합병증 등 위험이 나타났다. 사람마다 체질과 생활습관이 달라 같은 수술을 해도 어떤 환자는 효과가 좋고 어떤 환자는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어 같은 매뉴얼을 적용할 수 없다. 개개인에 맞춰 수술 종류와 시기, 사후 집중관리법, 심리 치료까지 암에 대해 총체적이면서 유기적 접근법인 정밀의학이 필요해졌다.

암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마다 보유한 특정 유전자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암이라도 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변이 종류에 따라 치료 약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병원은 ‘온코민 종합분석 V3(Oncomie Comprehensive Assay V3)’ 등을 도입했다. 이는 161가지 유전자를 동시다발적으로 분석하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 키트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는 국가 암 등록 사업 표준 검사법으로 이용한다.

후마니타스암병원이 추구하는 진료모델은 의학과 한의학, 치의학을 아우르는 ‘다학제적 접근 방식의 개인맞춤형 정밀의료’가 핵심이다. 암 환자 개개인을 중심에 두고 시행하는 정밀의료 서비스를 가리킨다.

다학제 회의에는 외과를 비롯해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혈액내과, 정신건강의학과까지 여러 분야 의료진이 모여 암 치료를 위한 확실한 방법을 찾는다. 특히 다분야 협진치료에는 경희의료원이 보유한 의대‧한방‧치과병원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의대병원은 암 환자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 등 치료를 맡는다. 한방병원은 암병원 공간 내 구성된 한의면역센터를 중심으로 면역 강화에 초점을 둔 항암 치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한다. 암 환자 약 40% 정도에서 나타나는 구강 합병증 치료는 치과병원이 담당한다. 경희대학교병원과 경희대학교치과병원은 구강암 치료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협진 수술 시스템을 보유했고 치료 성적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후마니타스암병원의 목표는 ‘암을 넘어선 삶(Life Beyond Cancer)’이다. 정 암병원장은 "다학제 진료를 통해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고 있다"면서 "병을 이겨내겠다는 환자 의지가 치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의료진이 환자와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한다. 암 통증에 버금가는 마음 통증을 덜어주는 일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일이라는 사명을 되새긴다"고 강조했다.

정 암병원장은 유방암 분야 전문가로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유방암센터장 등을 지냈다. 국내 최초 유방암 환우회를 설립해 환자들을 돕는 ‘핑크리본 캠페인’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등 암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