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지난달 100조원의 몸값을 인정받으며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후, 시가총액이 최대 수십조원에 달하는 이른바 ‘유니콘’ 벤처기업들이 잇달아 미국 상장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미국 상장 러시에 대한 금융 투자 업계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업계 일각에서는 실현되기 쉽지 않은 일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반면, 글로벌 증시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벤처기업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 마켓컬리, 야놀자에 빗썸까지… 미 증시 문 두들기는 K 벤처

쿠팡 이후 가장 먼저 미 증시 입성에 나선 기업은 신선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이다. 이 회사는 미국 상장을 결정하고 최근 준비 절차에 착수한 상황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컬리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5조~7조원 수준이다.

컬리는 현재 미 증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3000억원 규모의 상장 전 자금유치(pre-IPO)를 추진 중이다. 회사 측에서 제시한 기업가치는 약 3조원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컬리는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인만큼 이번 pre-IPO에도 대체로 외국계 기관이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컬리는 이미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 중국 힐하우스캐피탈 등으로부터 4000억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벤처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나 성장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라며 "그중에서도 컬리는 다른 나라 업체들과 비교해봐도 신선식품·식자재 배송업에 매우 빠르게 진출해 시장을 선점한 만큼, 해외 투자자들의 눈에 매력적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컬리의 경영진과 재무구조의 성격도 미 증시 상장에 좋은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컬리는 연간 1000억원 넘는 영업손실을 내는 적자 기업이기 때문에, 쿠팡과 마찬가지로 유가증권·코스닥시장보다는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김슬아 대표이사가 미 웰즐리대를 졸업해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한 ‘해외파’인 만큼, 미 증권업계에 정통하다는 평가다.

숙박업 플랫폼을 운영하는 야놀자도 미국 상장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회사는 이미 미래에셋증권과 국내 상장주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인데, 미국 증시에도 이중상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야놀자의 현재 기업가치는 5조원 수준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야놀자가 미국에 상장한다면 기업가치를 최대 20조원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야놀자 관계자는 "지난해 에어비앤비의 연 매출은 3조원이었으며 기업 가치는 130조~140조원이었다"며 "야놀자의 매출액이 3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해 적정한 주가매출비율(PSR)을 적용해서 계산하면, 시가총액이 13조~14조원 수준이라고 추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컬리·야놀자 뿐 아니라 웹툰 업계 라이벌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앞다퉈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카카오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자회사 두나무도 미국 증시에 상장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그 외에도 토스, 직방 등이 향후 미국 직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 몸값 높이려는 협상카드 vs 성장성 유망하면 충분히 가능

국내 벤처 기업들이 잇달아 미국 상장에 나서는 데 대해, 금융당국과 일부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부문 임원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국내 상장 비용의 열배에 달한다"며 "벤처기업 입장에서 고비용을 감당하며 해외에 상장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얼마나 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도 "실제로 미국 상장 가능성이 큰 회사도 있겠지만, 스스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면서도 의도적으로 (해외 상장을) 계속 언급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벤처기업이 미국에 상장한다고 알려지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미지가 좋아질 수 있으며, 국내 상장 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쉽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지나치게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해 상장 신청을 하더라도, 유니콘의 상장 유치를 놓칠까 봐 마음이 급한 거래소 측에서 웬만하면 승인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대체로 국내 벤처기업들의 해외 상장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기업이 미국에서 무조건 높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규모가 워낙 큰데다 아마존 같은 비전통적 산업과 현재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다만 회사의 규모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해외 증시에서 상장하라고 권유해도 스스로 마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이 상장 주관 비용으로 2000억원을 지불했듯, 미국에서 상장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회사 가치가 최소 5조원 정도는 돼야 미 상장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VC 대표도 국내 벤처기업 중 뚜렷한 성장성을 지닌 일부 업체들은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특정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지키고 있거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은 충분히 미국 상장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