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다음 달까지 총 2조7000억원어치에 달하는 공모주가 기업공개(IPO) 시장에 나온다. SK IET를 시작으로 에이치피오, NH스팩19호 등이 공모 청약을 앞두고 있다.

올여름에는 크래프톤·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가 나란히 증시 입성에 나서며, 개인 투자자들의 공모주 청약 열기도 점점 더 고조될 전망이다.

그래픽=정다운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공모주 청약 일정을 결정하고 대기 중인 종목은 총 13개다. 이들 공모주가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한 달간 공모할 금액은 총 2조7137억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1~3월 석 달 동안 집계된 공모액 합계(2조8609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공모 청약을 앞둔 종목들의 공모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공모 금액은 각사에서 제시한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상단을 기준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장을 추진 중인 종목들의 공모가가 대부분 밴드 상단보다 5~10%가량 높게 정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모 금액은 추정치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말 가장 먼저 공모 청약에 나설 종목은 SK IET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 IET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8조원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공모 금액이 2조2460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약 30%에 달할 전망이다.

SK IET의 공모 물량 중 상당한 부분이 SK이노베이션의 구주 매출에서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이 보유 중인 주식 5646만7432주(지분 90%) 가운데 1283만4000주를 공모주로 내놓는다. 여기에 신주 855만6000주를 더해, 총 2139만주에 대한 청약을 받는다.

이 외에도 유산균 등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에이치피오가 1012억원을 공모할 예정이며, 스팩(SPAC)으로서 이례적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하는 NH스팩19호는 800억원을 공모한다. NH스팩19호는 규모가 다른 스팩에 비해 월등히 큰 만큼 시가총액이 큰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추진할 확률이 높다.

IPO에 나서는 기업이 워낙 많다 보니 같은 날 여러 공모주가 동시에 청약을 받는 사례도 속출한다. SK IET는 하이스팩6호와 같은 날 공모 청약을 받는다. 5월 3~4일에는 라온테크·에이치피오·아모센스 등 세 개 기업이 동시에 공모한다. NH스팩19호·삼성스팩4호·삼영에스앤씨도 5월 11~12일 동시에 공모 청약을 한다.

그래픽=정다운

통상 이렇게 공모 청약 일정이 몰리면 주목받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종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 IPO 시장의 상황은 예년과 다르다.

앞서 지난 1월 25~26일 이틀간 4개 종목이 동시에 공모 청약을 받았는데, 그 중 와이더플래닛과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2개 기업이 10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237대1을, 신한스팩7호는 7.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스팩은 청약이 1 대 1에 못 미치며 미달된 사례도 많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4개 종목이 동시에 청약을 진행한 것치고 매우 양호한 성적이다.

공모주 시장 규모가 유례없는 수준으로 큰데도 투자자들의 수요가 뒷받침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 유동 자금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6일 기준으로 증권사에 보관된 투자자예탁금은 총 67조원에 달했다. 지난달 31일 기준 예탁금 총합(62조6200억원)보다 4조원 이상 많다. 개인 투자자들의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62조원으로, 지난달 (57조원)과 비교해 많이 증가했다. CMA는 투자자가 언제든 출금할 수 있는 단기 부동자금으로서, 증시 주변 자금으로 분류된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시의 유동성도 풍부한데다, 지난해 하이브(옛 빅히트)와 카카오게임즈가 상장 후 주가가 많이 오르며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자 ‘공모주만 배정받으면 돈을 번다’는 기대심리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IPO 시장 규모가 현재 수준보다 더 커질 경우, 투자자들이 이를 소화할 만한 여력이 있을지는 재고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오는 7월에는 ‘초대형’ 공모주들의 청약 일정이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과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뱅크가 최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이달 중 카카오페이도 상장 심사에 도전한다.

크래프톤과 카카오뱅크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각각 최대 30조원, 20조원으로 전망된다. 카카오페이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최대 10조원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전체 발행주식의 20%가 공모주로 나온다고 가정한다면, 공모 규모는 총 12조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소위 ‘대어’들이 비슷한 시기에 공모 청약에 나선다면 투자금이 어느 정도 분산될 수는 있으나, 이미 공모 시장의 저변이 확대됐기 때문에 청약 미달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다만 상장 후 주가는 결국 기업가치에 수렴하는 만큼, ‘다들 투자하니 나도 동참하자’는 심리로 뛰어들기보다는 회사의 재무구조와 사업성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나서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