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자문서, 텍스트 판독 불가능한 상태로 공개
대체텍스트 연동된 미국·호주와 달리 한국은 全無
담당자 인식 개선 시급…해외처럼 접근성 교육 받아야

일러스트=정다운

‘공고 제2021-32호 보조금지급공고 PDF 1페이지 문서 시작… 문서 끝’

시각장애인 A씨는 올해 초 국가가 각 정당에 주는 경상보조금(정당보조금)이 궁금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에서 보조금 지급 공고를 열람했지만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읽어주는 음성 인식 서비스는 텍스트 기반의 문서여야 제 기능을 하는데, 선관위 문서는 이미지 기반의 PDF 파일이어서 시스템이 읽을 수 없는 형태였던 것이다.

1분기 전체 정당 보조금 가운데 45%인 약 53억원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갔고, 제1 야당 국민의힘은 40%에 해당하는 약 46억원을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상당한 금액의 국가 재정이 정당에 지원됐지만,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의 사이트 접근성 개선에는 세금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한다.

조선비즈가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디지털시각장애연대(디시연)로부터 제공받은 ‘정부 문서 접근성 결과 보고’에 따르면 정부 여러 문서는 시각 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공개되고 있었다. ‘접근성’이란 모든 사용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디시연은 8개 정부부처의 견본 PDF 파일 5개씩을 선별해 접근성 준수 여부를 평가했고, 비슷한 기능을 하는 미국·호주 정부 각 부처 문서를 국내 정부 문서와도 비교했다. 한국 정부 문서는 대체로 미국·호주 정부의 절반 수준밖에 못 미쳐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시연은 크게 문서 가독성과 페이지 내용, 양식, 대체 텍스트, 표, 목록, 제목 등으로 항목을 나눠 정부 문서를 평가했다. 그 결과 정부 부처 중 꼴찌는 중앙선관위였다. 미국 선관위를 100으로 본다면 한국 선관위는 43.8점으로 절반 이하였다.

특히 선관위 문서는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나 글자를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 부문에서 0점을 받았다. 시각 장애인들이 문서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도록 정보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선관위가 올린 보조금 지급 공고를 인식하면 ‘문서 시작’, ‘문서 끝’이라는 음성만 들리고 끝맺는 식이다. 반면 디시연에서 평가한 미국 선관위 문서는 시각 장애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100점을 맞았다.

그래픽=김란희

보건복지부도 낙제점을 맞았다. 해당 평가에서 복지부는 49.4점이 나왔다. 장애인 복지의 주무 부처가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불명예를 얻은 것이다. 이어 행정안전부(49), 교육부(50), 국토교통부(50.6), 고용노동부(51.2), 여성가족부(51.8), 문화체육관광부(60.6) 순으로 나타났다. 모두 미국·호주 정부 기관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점수였다.

국내 정부 문서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서를 작성하고 올리는 담당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무원 임용 후 접근성을 위한 문서 작성 교육이 이뤄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교육과정이 전무하다는 점도 장애인의 정부 기간 사이트나 문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꼽혔다.

한혜경 디시연 대표는 "문서를 외부에 공개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이 문서를 시각 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번쯤 고려해보는 기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간단한 이미지 형식의 문서를 텍스트로 변환하고 대체텍스트를 입력해 표나 목록에 조금만 신경쓰면 접근성 준수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