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30일 쿠팡 대기업집단 지정 전망
기업 총수 해당하는 동일인에 김범석 지정할 지 주목
한미 FTA 위반 소지...공정위 규정 변경 땐 가능

"쿠팡의 B클래스 소유주이며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범석은 이번 기업공개(IPO) 이후 76.7%의 의결권을 보유할 것이고 이사 선임을 포함해 주주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의 결과를 통제할 능력을 갖게 된다." (쿠팡 미국 뉴욕 증시 상장신고서)

공정거래위원회 오는 30일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예정인 가운데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쿠팡 창업자이면서 의결권 76.7%를 보유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을 오는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총수를 뜻하는 동일인으로 지정할 지 주목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하고 사익 편취 여부가 적발되면 제재, 검찰 고발을 당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회사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쿠팡은 작년 기준 자산총액이 50억6733만달러(5조6500억원)로 대기업집단에 해당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동일인 지정에 대한 것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지분율과 함께 '기업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 여부'를 토대로 동일인을 지정해 왔다. 업계에선 김 의장이 이런 정의에 부합한다고 본다. 쿠팡 지분율은 10.2%에 불과하지만 의결권 비중이 76.7%에 달하기 때문이다. 쿠팡도 상장신고서에서 김 의장의 경영상 영향력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정위가 실효성 문제로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 △이미 미국 증시에 상장돼 경영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 때문에 지정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가 이 사안에 대해 함구하는 가운데,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명분과 지정하지 않을 명분이 모두 뚜렷해 결국 정무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공정위 안팎에서 제기되는 3대 쟁점을 정리해 봤다.

①김범석 의장이 미국인이라서 안된다?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가 주목 받는 것은 그가 미국 국적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을 동일인으로 지정을 한다 해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에쓰오일의 모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이고 아람코 최대주주는 사우디 황실이지만 공정위는 한국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외국인이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최대주주가 외국기업이지만 한국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에쓰오일, 한국GM과 쿠팡 사례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에쓰오일과 한국GM은 주요 주주 가운데 김 의장처럼 창립자이자 개인이 두자릿수 지분율을 보유한 주주가 없다. 에쓰오일은 아람코(63.41%), 한국GM은 GM 계열사(76.97%)와 한국산업은행(17.02%) 같은 기관들이 주요 주주다. 주주 명단에도 없는 기관의 CEO를 굳이 동일인으로 지정할 명분이 없다.

②이미 경영 정보 투명한데…이중 규제 아닌가

또 다른 논란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는데다 이미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돼 엄격한 경영 정보 공개 의무를 지고 있는 쿠팡에 공정위가 불필요한 이중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이다. 동일인 제도는 1980년대 삼성, LG 같은 재벌들이 소수 지분으로 계열사를 좌지우지하고 사익 추구 행위를 한다는 비판 때문에 도입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급성장한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IT기업은 2, 3세 세습 경영을 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설립자인 이해진 의장은 대표,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현재는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맡고 있다. 쿠팡 역시 올해부터 김 의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강한승, 박대준 공동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쿠팡의 경우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미 연방규정(CFR)을 적용 받아 한국 상장사들보다 폭넓은 공시 의무 규정을 진다. 동일인과 그 가족 뿐 아니라 회사 5% 주주 및 임원과 이들의 가족까지 회사 관련 거래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경제개혁연구소 출신인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절대적으로 회사 경영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1인이 없고, 바람직한 지배구조가 정착돼 있다는 점이 확인이 된다면 민영화된 공기업 포스코처럼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며 "민간기업도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면 동일인을 지정하지 않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③한미 FTA 위반 소지...해외 투자 유치에 악영향?

법조계에선 쿠팡의 미국인 투자자인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혜국 대우는 미국인 투자자가 제3국 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아선 안된다는 내용이다. 김 의장을 미국기업 쿠팡에 일정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로 보는 시각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상호출자, 지주회사 설립 제한, 각종 공시의무 등이 적용돼 투자 활동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사실이며, 공정위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면 한미 FTA상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이 성립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지금이라도 공정위가 관행을 변경해 김 의장과 유사한 상황에 있는 모든 경우(에쓰오일, 한국 GM 등)를 동등하게 외국인이라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하면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FTA 위반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투자자들에게 '재벌 이미지'가 각인돼 해외 자금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4년 전 네이버의 반발에도 이해진 GIO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면서 공정위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그런 논리라면 삼성, 현대차도 투자활동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당장 삼성에서 동일인이 없어진다면 오히려 해외 바이어와 관계에서 차질이 있을 수도 있다"고 일축했다. 공정위가 동일인으로 지정해 사익 편취와 관련해 공시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해외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은 삼성, LG 사례를 보면 터무니 없다는 것이다. 네이버 역시 동일인 지정 이후에도 기업 규모가 더욱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