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닥터자르트 1조3000억원에 인수한 에스티로더
1년 만에 유상감자로 2208억원 회수
코로나19로 매출·영업익 첫 감소...배당금은 44.7% 늘려

K-뷰티 브랜드 닥터자르트를 1조원대에 인수한 미국 화장품 그룹 에스티로더컴퍼니즈(이하 에스티로더)가 지난해 유상감자(주식소각)를 통해 약 2208억원의 투자금을 회수했다. 같은 기간 스타일난다를 6000억원에 인수한 로레알도 유상감자로 1326억원을 회수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스타일난다 이어 닥터자르트도 투자금 회수, 이유는?
15일 닥터자르트 운영사인 해브앤비의 연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지분 100%를 보유한 에스티로더 코스메틱 리미티드(Estee Lauder Cosmetics Limited)를 대상으로 2208억원 규모의 유상감자를 진행했다. 유상감자란 회사가 주식을 유상으로 소각해 자본금을 줄이는 것으로, 기업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거나 주주들이 투자금 회수를 요구할 때 단행된다.

그래픽=정다운

에스티로더는 2015년 닥터자르트의 지분 33.3%를 인수한 데 이어, 2019년 11월 나머지 지분을 전량 매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수대금은 약 11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에스티로더가 아시아 화장품 회사를 인수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한국의 마스크팩과 BB크림 등이 인기를 끌면서 K-뷰티 열풍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에스티로더·맥·라메르·조말론 등 럭셔리·색조 화장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던 에스티로더는 중저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인 닥터자르트를 통해 아시아 시장 진출을 구상했다. 당시 닥터자르트의 기업가치는 17억달러(약 2조원)로 평가됐다.

2004년 건축학도 출신의 이진욱 대표가 설립한 해브앤비는 더마 코스메틱(약국 화장품) 브랜드 닥터자르트를 출시한 후 BB크림, 세라마이딘, 시카페어 등을 히트시키며 급성장했다. 현재 뉴욕과 상해에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며, 세계 38개국에 진출했다. 닥터자르트 외에도 남성 화장품 DTRT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에스티로더는 닥터자르트를 인수한 지 1년 만에 유상감자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에 따라 발행주식수는 4만주에서 3만3100주로, 자본금은 2조원에서 1조6550만원으로 줄었다. 에스티로더는 이번 감자로 35억원가량을 손해본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측은 감자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감사보고서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회사가 사업을 영위하는 대부분의 지역 및 영업 부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에 따른 업황 불황으로 닥터자르트의 기업가치가 떨어지자 에스티로더가 투자금을 회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년 지분투자 계획서 서명 후 사진을 촬영한 이진욱 해브앤비 전 대표(왼쪽)와 윌리엄 로더 에스티로더 컴퍼니즈 회장(오른쪽). 이 대표는 현재 해브앤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술감독)로 닥터자르트의 자문을 맡고 있다.

닥터자르트는 첫 투자가 있던 2015년 863억원이던 매출이 2019년 6347억원까지 증가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매출(5123억원)이 19% 감소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0%씩 급감했다. 이익이 줄었지만, 배당금은 늘었다. 에스티로더는 전년보다 44.7% 늘어난 411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화장품 업계에선 코로나19로 면세점 매출이 준 것을 부진의 이유로 꼽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닥터자르트의 2018년 국내 면세판매액 2409억원으로, 명품인 샤넬, 구찌, 루이비통보다 돈을 더 벌었다.

해외 실적도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 지사 매출과 당기순손익은 각각 11%, 68%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세포라 등 화장품 판매점이 폐쇄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판매를 활발히 한 상해 지사의 매출은 1108억원으로 48% 증가했고, 당기순손익은 10% 늘었다.

◇코로나에 휘청인 K-뷰티...다시 제값 인정받을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에 매각됐던 닥터자르트와 스타일난다가 유상감자를 단행하자, 시장에선 K-뷰티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센 언니' 콘셉트로 패션과 화장품 사업을 성장시킨 스타일난다는 지난해 매출이 2563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줄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8%, 19% 감소했다. 한때 색조화장품 브랜드 쓰리컨셉아이즈(3CE)로 중국·홍콩 등에서 K-뷰티 바람을 일으켰지만, 코로나19로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유행하고 현지 화장품의 경쟁력이 높아지자 위상이 저하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닥터자르트의 실적 부진에 대해선 일시적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코로나19 이후 피부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기초화장품(스킨케어)과 더마 코스메틱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P&S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더마 코스메틱 시장은 연평균 6.5% 성장해 2024년 763억달러(약 92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대적으로 스킨케어 카테고리가 취약한 에스티로더로서도 닥터자르트는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에스티로더는 닥터자르트 인수로 2020년 2분기 스킨케어 카테고리가 7% 성장했다고 밝혔다. 보그 비즈니스에 따르면 최근 에스티로더는 증강현실(AR) 및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등을 활용해 닥터자르트의 디지털 판매를 강화하는 중이다.

다만,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관건이란 지적은 나온다. 최근 닥터자르트는 자외선차단제 '우주선 크림'을 출시하면서 자외선 차단지수(SPF)를 허위 표기한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