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배구조 개편 추진 땐 글로비스에 유리
주주 반대로 무산돼 그때와 같은 방식은 아닐듯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대 주주로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작업이 추진되면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정 회장이 1조원가량의 현금을 마련해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할 현대글로비스(086280)현대모비스(012330)의 주가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지난 2018년 시도했던 개편안을 다듬어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모비스를 핵심 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나눈 뒤 모듈·AS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는 방안을 내놓았다. 현대글로비스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데다 물류 사업을 통해 대규모 매출을 안정적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란희

이후 오너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고 기아(17.3%)와 현대제철(5.8%), 현대글로비스(0.7%)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대주주→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정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들 계열사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 가치는 약 7조원이다. 지금은 모비스→현대차→기아→모비스로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글로비스가 모비스의 핵심 사업을 넘겨받는 대신 모비스는 지배회사가 되는 셈이다.

상장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팔아 마련한 현금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발생하는 상속·증여세를 납부하거나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룹 안팎에서는 정의선 회장의 총수 지정을 앞둔 지금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적기로 보고 있다. 주식시장이 호황기에 있어 기업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용이하고, 미래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 업계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불확실성을 하루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올해 시행되는 새로운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주주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도 맞물렸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에서 20% 이상인 상장사로 확대된다. 현재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29.9%다. 연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최소 10%는 매각해야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현대모비스가 플랫폼과 시스템 중심 사업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황도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과 같은 시나리오로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되면 그룹의 지배회사가 되는 현대모비스는 부품 사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며 "미래차 시대에 대응해 현대모비스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플랫폼과 시스템 선도 기업으로 나가겠다고 발표한 것은 글로비스에 넘길 모듈·AS부품 사업보다 핵심 부품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란희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이 추진된 당시 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을 공식화하고, 현대모비스 1주당 합병 현대글로비스 신주 0.61주를 주는 방안을 내놓았었다. 이 안이 현대모비스 주주에겐 불리하고 현대글로비스 주주에겐 유리했던 것으로 평가돼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상승하고 현대모비스 주가는 하락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글로비스와 모비스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으로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주들의 반대로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됐던 당시 현대차는 주주들에게 보낸 친서에서 "분할 합병 방안을 보완 개선하기 위해 합병 계약안을 해제하고 재추진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당시 개편안보다 모비스 주주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병 비율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