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새 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등에 대거 투자
"우한 정부 지원 등에 업고 반도체 독립 시도"
오포도 자체 모바일 칩 개발 위해 '인재 모시기'

미국 국방부의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난 중국 샤오미가 반도체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대륙의 만물상'으로 불리는 샤오미는 최근 전기차(EV) 산업 진출을 선언한데 이어 이번에는 반도체 설계·제조 역량 확보를 위해 중국 우한 정부를 등에 업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한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 이후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앞서 샤오미는 지난달 12일 미국 국방부가 지정한 '블랙리스트'에서 빠져나왔다. 당시 미국 연방법원은 "미 정부는 샤오미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미 투자자들이 샤오미 주식을 살 수 없도록 한 투자 금지 조항을 중단시켰다.

11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닛케이아시아의 분석 자료를 인용해 샤오미가 지난 2019년부터 올해 3월까지 최소 34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 지분을 사들이거나 지분율을 높였다고 보도했다. 또 반도체뿐만 아니라 25개의 IT 하드웨어 기업의 지분도 추가했다.

샤오미 기업 로고.

닛케이아시아는 샤오미가 지난 2년간 반도체 설계, 제조,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을 비롯해 카메라 센서, 자동화 및 정밀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도 골고루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본격화된 시점부터 이같은 투자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우한 정부의 강력한 재정 지원도 샤오미가 이처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이다. FT는 샤오미의 투자가 후베이샤오미창장산업기금이라는 자사 펀드를 통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이 펀드의 대주주는 우한 정부가 지원하는 투자회사로, 사실상 국영 펀드라는 설명이다. 펀드에 등록된 자금은 120억달러에 달한다. 설립 초기에는 별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심화되는 시점부터 반도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앞서 샤오미는 일찍이 독자적으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개발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샤오미는 2017년 자체 개발한 AP인 '서지(Surge) S1'과 함께 이 칩이 들어간 스마트폰 '미 5C'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자체 개발 AP에 더 힘을 쓰기보다는 퀄컴과 미디어텍 칩을 탑재하는 '안전한 선택'으로 방침을 바꿨다.

미국으로부터 화웨이가 난타당하는 것을 본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은 자체 반도체 기술 확보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도니 텡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자체 칩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 이후 핵심 기술에서 단절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 경험했다"며 "모든 칩은 아니지만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칩을 직접 설계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5위 스마트폰 회사인 중국 오포 역시 지난해부터 자체 모바일 칩 설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오포는 자체 칩 확보를 위해 미디어텍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제프리 추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미디어텍 5G 칩 개발 경험이 있는 임원도 추가로 1~2개월 내에 영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텍은 중국 2위 모바일 칩 개발사인 UNISOC에서 다수의 엔지니어를 데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자체 칩을 설계하는 것은 미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이 같은 노력은 투자가 많이 필요하며 열매를 맺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