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를 월 2회 강제 문 닫게 한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대형마트 규제는 전통시장 살리기에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 유통산업법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3부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대형마트 의무휴무제가 시행된 지 올해 10년째가 됐다. 2012년 1월 17일 공포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점포와 중소점포의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규모 점포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무일을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이어 4월 10일, 유통법 개정 후속 절차로 대규모 점포의 범위를 대형마트로 한정하고,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을 지키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 등의 내용을 담은 시행령이 발효됐다.

그래픽=이민경

◇ 마트 의무 휴업, 전통시장 소비 줄이고 체질 약화...수혜자가 없다

2012년 공포된 유통법은 지방자치단체와 유통기업간 충돌을 일으켰다. 법 개정 이후 시행령이 나오기 전 각 지자체들은 조례를 제정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무일을 지정했다. 유통기업들은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다.

6년 뒤인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시장 경제 질서에 부합한다'며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조용호 재판관은 "대형마트에 영업 규제가 도입된 지 5년 이상 지났고, 이외에도 각종 전통시장 지원 정책이 시행됐다"며 "그로 인해 전통시장으로의 매출 이전 효과가 있음을 나타내는 유의미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 재판관이 꼬집은 규제 실효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해당 규제를 비판하는 법조인들은 유통법이 공법 제정 원칙인 비례의 원칙 중 '상당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꼬집는다. 상당성의 원칙이란 법 제정으로 기대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해서 공익이 클 때만 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실시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의무휴업제로 대형마트에 못 갈 경우,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응답한 비율은 8.3%에 그쳤다. '슈퍼마켓을 이용한다'는 응답이 37.6%로 가장 많았고, '대형마트 영업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응답이 28.1%로 그 다음이었다. 이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이용'(14.7%), '편의점 이용'(11.3%) 순 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신용카드 사용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 도입 이듬해인 2013년 29.9%였던 대형마트 소비 증가율은 2016년 마이너스(-) 6.4%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도 2013년엔 18.1% 소비 금액이 늘었으나, 2016년엔 -3.3%로 감소했다.

그래픽=이민경

◇ 규제 10년 온라인 급성장...마트와 전통시장 ‘오월동주’ 신세

소비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오월동주(吳越同舟,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이 한 배에 타다)' 상황이 됐다. 온라인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소비자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게 두 집단의 공동 숙제가 됐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영업을 하지 않는 휴일엔 아예 장보기를 포기하고 대신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외곽 지역으로 나가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25조원 규모였던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9년 135조원대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 161조원으로 급성장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규제가 도입된 2012년과 지난해인 2019년의 업태별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2.6%포인트), 슈퍼마켓(-1.5%포인트), 그리고 중소유통 등이 포함된 전문소매점(-11.4%포인트)의 시장점유율은 동반 하락하는 동안 온라인 유통 점유율은 9.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10년만에 시장 규모가 6배 이상 커진 것이다.

식자재마트도 규제 밖에서 조용히 몸집을 불렸다. 식자재마트는 면적이 3000㎡를 넘지 않아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다. 식재료를 비롯해 다양한 공산품을 저렴하게 판매해 대형마트 및 전통시장과 주 고객층이 겹친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매출액 100억원 이상 식자재 마트 점포수는 전체의 0.5%에 불과하지만, 매출 비중은 24%를 차지한다. 이런 식자재 마트 점포 수는 4년(2014~2019년) 동안 74% 늘었다.

코로나 전염병 유행으로 오프라인 시장 침체가 가속화 되자 유통 대기업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기초 체력이 약한 소상공인들은 벼랑길로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통시장 상생을 논의하는 방안이 대기업을 규제하는 방향으로만 치우치다 보니 전통시장의 체질이 약해졌다고 꼬집는다. 서용구 교수는 "유통 상생 논의는 대기업 규제보다 전통시장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데 10여년동안 그러지 못했다"면서 "지금이라도 각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상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전통시장 상인은 "대형마트가 쉬면 손님이 더 오지 않겠느냐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효과가 없었다"면서 "시장의 주차시설이나 화장실을 개선하고, 공원과 같은 주민 휴식 시설을 시장 근처에 설치해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 편익 부분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이 올초 실시한 소비자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8.3%는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하거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태윤 전경련 산업전략팀장은 "국민들은 생필품과 식재료의 주된 구입처로 대형마트를 선호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점포의 영업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마트를 향한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16개다. 일몰(효력 상실)을 앞뒀던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조항을 5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머지 15개 법안은 산자위 소위에 계류 중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휴업'을 담은 유통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 등 새로운 혁신 매장이 지역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같은 혁신적인 소매 매장을 규제 대상으로 볼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출점을 적극 권장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