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작년 6월 현장 근무 소방관 '재산등록' 면제
"하위직 공무원의 부담 경감"이 효과라더니
LH 사태에 시행 3개월만에 제자리..."불끄는 것과 땅투기가 무슨 상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 재발 방지책 차원으로 정부가 전 공무원의 재산등록 의무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소방공무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화재진압·구조 등 소방공무원의 특성상 업무상 정보를 활용해 이익을 보기 어려운 만큼, 현장 근무자를 대상으로 재산등록을 면제해준 바 있다. 이에 올해 1월 약 2만여명의 소방공무원들이 재산등록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공직자들의 투기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며 모든 공무원에 대한 재산등록을 추진하면서, 개정규정 시행 1년만에 백지화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공직자 재산등록을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1월부터는 다시 재산등록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부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정책 일관성이 없다" "불끄는 것과 땅 투기와 무슨 상관이나?" "업무과중해서 빼준다더니, 이제는 범죄자 취급한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12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 조문별 제개정이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6월 화재진압·구조·구급 등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공무원의 재산등록 의무를 제외하는 공직자 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한 소방관이 산불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

개정안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중 소방령, 소방경, 소방위 및 소방장. 다만, 소방위, 소방장 중 화재진압·구조·구급 등의 현장 업무 또는 상황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으로서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부서 단위로 승인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받은 사람은 제외한다’고 명시돼있다.

지역의 한 소방관은 "올해 1월 처음으로 재산등록을 면제받았다"며 "재산등록이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하겠지만, 현장에서는 업무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LH 사태 본질은 업무상 정보 이용이다. 소방관이나 선생님들이 업무에서 무슨 투자 정보를 얻는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그동안 소방장(7급) 이상의 모든 소방공무원은 재산등록을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주기적인 재산 신고를 통해 부정한 재산 증식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장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업무 특성상 취득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며, 재산등록제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이에 수년 간의 의견수렴 끝에 2019년 12월 3일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올해 1월 인·허가나 조사, 단속과 같은 규제 업무가 아닌 현장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위와 소방장은 재산등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중이용업소 완비 증명발급 등 민원과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위·소방장은 종전대로 재산등록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한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밤샘 진화작업 이후 구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법개정 이유에 대해 "인·허가, 조사·단속과 같은 규제업무 없이 화재진압·구조·구급 등 현장 업무 또는 119 종합상황실 등 상황관리 업무에만 종사하는 하위직 소방공무원에게 재산등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권한에 비해 과도한 부담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 입법효과에 대해서는 "업무의 성격과 권한을 고려한 재산등록의무자 조정을 통해, 일선에서 근무하는 하위직 공무원의 부담 경감이 가능하다"고 적었다.

시행령 개정에 따라 소방청은 전국 소방서에 공문을 보낸 뒤, 현장 근무 소방인력에 대한 재산등록을 제외시켰다. 예를 들어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는 재산등록자 5167명 가운데, 2932명(56.7%)이 면제를 받았다. 제주도의 경우 재산등록 대상자 565명 중 343명(60.7%)가 제외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재산등록 면제를 받은 인력이 전국적으로 약 2만명 수준"이라며 "정책을 바꾼지 일년도 안돼서 LH 사태로 다시 재산등록을 하라는 것은 불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추경호 의원은 "잘못은 LH가 했는데 열심히 생명 구한 소방관이 벌받는 꼴이 됐다"며 "정부는 좀 더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부는 소방관 뿐만 아니라, 2017년 건축·토목·환경·식품위생 담당 부서의 재산등록 대상자의 범위도 조정했다. 인·허가 등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현장 업무만을 수행하는 공무원이 재산을 등록하고 퇴직 후 취업심사를 받는 것이, 일선 중·하위직 공무원의 권한에 비해 과도한 부담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