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개인형 퇴직연금(IRP) 고객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규 가입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물론, 다른 금융기관의 개인형 IRP도 뺏어오기 위해 각종 경품을 내걸고 있다. 개인형 IRP는 은행 입장에서 수수료 수익에 장기 고객까지 확보할 수 있는 ‘알짜’ 상품인데, 최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는 증권사로 개인형 IRP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어 은행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달부터 시작한 ‘개인형 IRP 스타트 업’ 이벤트를 이달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벤트 대상은 개인형 IRP에 10만원 이상 신규 입금하거나 1년 이상 자동이체를 등록한 고객, 300만원 이상 신규 가입한 고객, 다른 금융기관의 연금 계좌를 하나은행 개인형 IRP로 이전한 고객 등이다. 하나은행은 이들 중 추첨을 통해 경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비슷한 이벤트를 오는 6월 말까지 이어간다.

그래픽=정다운

개인형 IRP는 근로자가 이직 혹은 퇴직 시 받은 퇴직금이나 본인 돈을 연금화할 수 있는 상품이다. 2017년부터 소득이 있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됐다. 직장을 그만두면 새 직장에서 다시 가입해야 하는 회사 퇴직연금과는 달리 직장과 관계없이 계속 상품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이전까지는 회사가 알아서 굴려주는 퇴직연금이 있는데다,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번거로워 개인형 IRP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IRP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을 마련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연 700만원까지 연말정산 시 최대 115만5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어 기본 세액공제만으로 매년 납입금액의 연 10% 이상 수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최근 주식 시장이 강세를 보이면서 개인형 IRP 역시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권이 운영하는 개인형 IRP 적립금이 크게 늘어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증권사에서 개인형 IRP에 가입하면 은행과는 달리 보다 공격적 투자가 가능한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금투업권의 지난해 말 기준 개인형 IRP 적립금은 7조5485억원으로 전년 대비 48.7% 늘었다.

은행권의 개인형 IRP 적립금 역시 같은 기간 17조5969억원에서 23조8555억원으로 36%가량 늘긴 했지만, 금투업권 증가율에는 다소 못미치는 수준이다. 은행들이 다른 금융기관의 연금 계좌에서 옮겨오도록 고객을 유인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권사는 운용 상품 특성상 은행보다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다, 일부 증권사는 개인형 IRP에 필요한 각종 수수료도 모두 면제해줄 만큼 공격적으로 영업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은행끼리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은행 대 증권사의 싸움일 정도로 경쟁에 불이 붙있다"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 개인형 IRP 시장은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 금융권의 개인형 IRP 적립금은 34조원 규모를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보다 35%(9조원) 넘게 성장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 남은 미래 먹거리 중 가장 큰 시장이라 본다"며 "연금 특성상 한번 가입하면 수십년간 유지해야 해 장기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데다, 수수료 등 수익 측면에서도 은행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라 가입 초기에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개인형 IRP를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경고음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금리가 낮은 예·적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에만 넣어놓으면 손해일 수 있지만, 노후 자금을 지나치게 위험성이 높은 상품으로만 굴리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시가 하락하면 수익률은 언제든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며 "높은 수익률만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 시각에서 개인형 IRP를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