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금호타이어(073240)등 자동차 제조업체 사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노조설립의 주축은 저연차 2030 사무직이다.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탄생한 사무연구노조는 기존 노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향후 노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HMG사무연구노조(가칭) 임시집행부는 노무사·노무법인 5곳을 선정하고 2개 사 사무노조위원장으로부터 설립 조언을 듣고 있다. 오는 18일까지 노조 설립을 위한 법리적 검토를 마치고 매니저들의 고용안전 보장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임시집행부는 노조 설립을 위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언은 구하되,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고 기존 노조와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올 초 대기업 저연차 직원들을 중심으로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공정한 성과급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공감한 현대차 그룹 직원들도 카카오톡 채팅방과 네이버 밴드 등 익명성이 높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무연구노조 설립을 추진해왔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내 성과 보상 논의가 생산직 위주로만 이뤄지면서 쌓여왔던 사무연구직의 불만이 노조설립 움직임으로 표출된 것이다.

현대차 사무연구직 노조설립의 주축이 된 건 20~30대로 이뤄진 MZ세대(밀레니엄과 Z세대의 합성어, 1980~2000년대 출생자)다. 최근 현대차 임시집행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무직노조 밴드 내 76%가 30대, 12%가 20대다. 40대와 50대는 각각 10%, 2%에 불과했다.

그래픽=이민경

현대차 사무연구직의 노조설립 움직임은 단순히 불만족스러운 보상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공정성·투명성 요구를 위한 선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MZ세대는 단결투쟁해 전체의 이익을 키우고자하는 기성 노조와 달리 독립적이고, 성과 중심의 투명한 평가를 바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같은 MZ세대가 노조설립을 선택한 것은 사측과의 소통 창구가 노조 중심의 임금단체협상 밖에 없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현대차의 저연차 직원들은 성과급 및 연봉 인상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인 조직 문화로 개선되길 원하지만, 사측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사실상 생산직 노조가 장악하고 있다"며 "사무연구노조 설립은 사내 소통창구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사무연구직들은 기존 생산직 노조처럼 노조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데에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현대차 그룹 한 직원은 "민주·한국노총 등 양대 노조 산하 제조업 노조는 잦은 파업으로 불통과 고집, 정치색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느냐"며 "노조나 투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부정적이어서 별개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말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업계에서는 사무연구직이 만들 노조가 기존 생산직 노조의 문화와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정년연장, 성과급 등 생존에 집중했던 기존 노조와 달리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 기준을 마련하고, 합리적인 조직문화와 중장기 동력을 만들 수 있는 복리후생에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무연구노조 임시집행부가 사무연구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에 바라는 점을 투표한 결과 '제도개선' 항목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다음로는 성과급 기준 불투명과 보상기준, 조직문화개선 등이 뒤를 이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요구하던 기본급 인상과 임금개편안 등은 후순위로 밀렸다.

집단화된 물리적 농성이나 파업투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만큼, 기존 노조와 다른 소통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노조는 중장년층이 요구해 온 정년 연장 등이 아니라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투쟁 역시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물리적인 충돌이나 생산 협박을 무기로 한 파업투쟁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