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 주식투자금만 약 76조원
금융기관 차입 규모도 역대 최대…'빚투' 영향?

'동학개미운동' 등 주식투자 열풍으로 지난해 가계가 주식 투자 등을 위해 굴린 돈이 사상 최대 규모인 약 76조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시에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금도 최대 기록을 갈아치워 가계 주식투자의 상당 부분이 대출을 통한 이른바 '빚투'라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돈을 끌어쓰면서 지난해 각 주체별로 자금 조달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확장재정으로 여윳돈이 쪼그라든 정부는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12년만에 끌어쓴 돈이 더 많은 상태인 순조달 상태로 전환됐다.

한국은행이 8일 공개한 '2020년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19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92조2000억원)보다 10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순자금 운용액은 통계 편제 이래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순자금 운용액은 해당 경제주체의 자금 운용액에서 자금 조달액을 뺀 값으로, 보통 가계는 이 순자금 운용액이 양(+)인 상태에서 여윳돈을 예금이나 투자 등의 방식으로 기업이나 정부 등 다른 경제주체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가계의 순자금 운용액이 전년과 비교해 늘었다는 것은 투자·예금 등으로 굴린 여윳돈의 증가폭이 대출 등 조달액보다 더 컸다는 뜻이다.

지난해 가계의 순자금운용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정부의 추경 집행으로 가계 이전소득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가계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425만7000원으로 전년동기(408만2000원)보다 17만5000원(4.3%) 증가했으나 민간최종소비지출은 931조7000억원에서 894조1000억원으로 37조6000억원(4%) 감소했다.

조달액을 고려하지 않은 가계의 전체 자금 운용 규모는 365조6000억원으로 이역시 사상 최대다. 가계는 주식 투자 등으로 자금을 굴렸다.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56조6000억원)가 전년(-5조9000억원)보다 60조원 이상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학개미’ 열풍 등으로 개인 주식 투자가 확대된 현상을 반영한다. 채권도 11조2000억원으로 2019년(-18조9000억원)보다 늘었다. 예금 등 금융기관 예치금(174조4000억원)도 지난해(125조2000억원)보다 늘었다.

가계 결제성 예금도 42조4000억원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주식 투자 등을 위해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예금으로 옮겨갔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연중 거주자발행주식 및 출자지분이 63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해외주식 취득액도 20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해외 주식 취득액은 2019년(2조1000억원)으로 일 년 만에 열 배 가까이 뛰었다. 가계가 테슬라 등 해외주식 투자에 나선 ‘서학개미’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해외주식 투자 규모까지 포함하면 결국 지난해 가계의 국내외 주식운용 규모는 76조에 달했다. 가계의 주식자금 운용 규모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09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를 갈아치웠다.

이와 동시에 가계는 지난해 173조5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 가운데 금융기관 차입이 171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모두 2009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기록이다. 지난해 가계는 사상 최대 규모의 돈을 금융권에서 빌려 주식 등에 투자를 했다. 내 집 마련과 주식 투자 등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방중권 한은 경제통계국 자금순환팀장은 "지난해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과 주식투자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자금조달액 중 일부가 주식 투자자금, 부동산 등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비금융 법인기업의 순자금 조달은 88조3000억원이었다. 전년도 61조1000억원에 비해 기업의 순자금 조달이 27조2000억원이나 확대된 것이다. 이는 지난 2011년 74억6000만달러 이후 최대치다. 순자금 조달은 자금 조달에서 자금 운용을 뺀 값이다. 기업은 가계 등이 공급한 자금을 가져다 쓰는 터라 순자금 운용액이 음(-)인 '순자금 조달' 상태가 일반적이다.

기업의 작년 자금조달액은 269조원으로, 1년 전(162조3000억원)보다 106조7000억원 늘었다. 특히 1년 새 금융기관 차입액이 84조4000억원에서 2배에 가까운 171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기업의 자금운용액(180조7000억원)은 2019년(101조2000억원)보다 약 79조5000억원 증가했다.

기업은 대출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해 연중 단기대출(37조3000억원), 장기대출(122조5000억원) 모두 통계 편제 이후 최대를 기록했고, 위기 대응을 위한 유동성 확보 노력으로 결제성예금(20조2000억원)과 단기저축성예금(95조3000억원)을 크게 확대했다. 기업 역시 코로나19 등 타격 영향으로 자금 운용과 조달이 모두 큰 폭 늘며 조달과 운용, 순조달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재정지출을 늘린 정부의 여윳돈은 쪼그라들었다. 정부의 순자금운용액은 전년 29조5000억원에서 -27조1000억원으로 순운용에서 순조달로 전환됐다. 코로나19로 재난지원금으로 인한 이전지출이 지난해 1~11월 333조4000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291조80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정부가 순조달을 기록한 것은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 -15조원으로 순조달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지난해 말 총금융자산은 전년말보다 2163조8000억원 증가한 2경76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자금순환통계에 나타나는 모든 경제부문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합계로써 국내부문은 물론 국외부문(비거주자)의 금융자산을 포함한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금융자산은 2488조4000억원으로 전년말보다 386조원 증가했으며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21배로 전년말(2.12배)보다 상승했다. 주가 상승 등의 영향이다. 가계, 정부, 비금융 기업 등을 더한 국내 비금융부문의 순금융자산은 3474조4000억원으로 전년말보다 555조4000억원 증가했다.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1.56배로 전년말(1.50배) 대비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