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국가들, 재정정상화 유턴…韓은 나홀로 '재정폭주'
2026년 韓 국가채무율 70% 육박… 재정건정성 순위도 17위로 후퇴
"재정건전성 양호" 정부 주장, 설득력 떨어져...연금 포함시 문제 더 커져
전문가 "국가신용도 악영향… 재정준칙 등 건전성 확보 노력 필요"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확장적 재정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5년 후인 202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70%에 이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가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그간 정부가 국가채무의 빠른 증가와 세수 부족 등 중장기 재정 여건을 감안해, 재정건전성 관리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던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주요 선진국 가운데 11위였던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 순위가 2026년이면 17위로 떨어진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펼쳤던 확장 재정을 줄이고 재정건전성 회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확장 재정을 펼치면서 202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7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채무비율 상승폭(21%포인트)으로 보면 주요 선진국 가운데 1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7일(미국 워싱턴 D.C. 현지시간) 발표한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0년 48.7%(국제 비교 지표인 D2 기준, 기재부가 6일 발표한 결산 자료는 D1 기준 44%)에서 2026년 69.7%로 21%포인트(P) 급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쌓여있는 만원권.

◇신용등급 강등 위험...선진국 대비 압도적인 국가채무비율 증가폭

그간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에 대해 주요국 대비 양호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5년 후인 2026년에는 ‘양호하다’는 말에 설득력을 잃게 될 전망이다.

IMF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35개국의 2020년 대비 2026년 국가채무율 평균 증감폭은 1.37%P로 집계됐다. 각 국가들이 대체로 채무율을 더 낮추거나 현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국가채무율은 21%P나 증가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재정의 문제는 결국 급증하는 속도에 있다"며 "2026년 선진 경제 35개국의 평균과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을 비교했을 때, 해당 기간 우리나라의 채무비율 증가 속도가 20배 이상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속도가 현실화 될 경우 신용등급 강등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IMF는 35개 선진국 중 19개국의 국가채무가 개선되고, 16개국이 악화될 것으로 봤다. 한국은 재정악화 16개국 중 채무비율 증가폭이 두번째로 컸다. 1위는 에스토니아(22.3%P)였다. 다만 에스토니아의 국민 1인당 GDP는 2만3000달러 수준으로 통상 우리나라 정부가 경제 비교군으로 삼지 않는 국가다. GDP 3만달러 이상의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채무비율 증가폭은 압도적인 1위다.

독일은 68.9%에서 57.1%로 11.8%P 감소, 일본은 256.2%에서 254.7%로 1.5%P 감소, 이탈리아는 155.6%에서 151%로 4.6%P 감소하는 등 2020년 대비 2026년에 국가채무비율이 오히려 줄어든다. 반면 영국(9.3%P)과 미국(7.4%P), 프랑스(3.4%P) 등은 2026년 국가채무율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에 비해 상승폭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채무비율이 상승하면서 한국의 재정 건전성 순위도 덩달아 급락할 전망이다. 2020년 한국은 국가채무비율이 낮은 국가 11위였지만, 2026년에는 17위로 6단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우리나라보다 국가채무비율이 좋지 않았던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슬로바키아 등에 비해 재정건전성 순위가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확장적인 기조를 이어가면서 증세 계획은 없고, 적자국채로 재원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다른 나라들이 이미 겪은 빠른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망치"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윤혜

◇전문가들 "기재부도 재정건전성 악화 알고있다…재정준칙 도입 시급"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구체적인 재정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한국이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선진국들이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이는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난 1월 IMF가 낸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는 2022년에도 재정적자 규모가 여전히 크고, 채무비율 증가세가 줄어들지 않았다"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기재정전망을 토대로 IMF가 재작성한 자료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기재부가 이대로 가면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것을 가감없이 전달한 결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전망에 대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5개년 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채무비율 관리와 관련해 여러차례 말을 바꿨다. 2018년에는 채무비율을 "40% 초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일년 뒤에는 "40% 중반 수준"으로 후퇴했다. 지난해에는 현 시점이 아닌, 2024년 50% 후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말을 바꿨다.

문제는 지난해처럼 올해도 재난지원금 등 재정퍼주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올해 1차 추경으로 올해 말 기준 국가 채무는 965조9000억원, 국가채무비율은 48.2%로 치솟을 전망이다. 대선을 앞두고 전국민 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가 쏟아질 수 있어, 문재인 정부의 습관성 추경 예산 편성이 반복될 경우 국가채무가 올해 중 10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등을 이유로 늘렸던 정부 지출을 줄여 재정운용을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독일 등 EU(유럽연합) 각국이 운용하는 재정준칙을 만들어 운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9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안팎에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 정치권의 냉대로 심의 조차 못했다. 홍 부총리가 만든 재정준칙이 재정규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가 무척 빠른 나라"라며 "우리 정부가 발표한 중기 재정운용계획에도 코로나19 이후 국가채무비율을 줄이지 않겠다고 나와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정부는 2025년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부채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너무 늦은 대응"이라며 "최소 수년전에 발표했던 재정운용계획 정도로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