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 세계 경기가 가파르게 회복되며 경기민감주로 꼽히는 자동차·화학·정유주에 대한 전망이 밝은 가운데,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자동차 관련주를 대거 매수하고 있다. 반면 화학·정유주는 대량 매도하며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올해 1~3월 현대차(005380)주식을 8358억원어치 팔았으나, 이달 들어서는 6일까지 불과 4거래일 만에 298억원을 순매수했다. 연기금은 이달 들어 기아(옛 기아차)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3개월간 총 2869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이달 들어 25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현대차 계열 자동차 부품사들도 마찬가지다. 연기금은 올해 들어 3개월간 현대모비스(012330)주식을 4700억원 순매도했지만, 이달에는 6일까지 4거래일 동안 64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현대위아(011210)주식 역시 같은 기간 335억원어치를 순매도했으나, 이달 4거래일 동안 21억원을 순매수했다.

연기금이 최근 자동차 관련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등 세계 경제 상황이 회복세를 띠며,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이 대폭 개선되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6%에 달할 것으로 6일(현지 시각) 전망했다. 지난 1월에 발표한 전망치(5.5%)보다 0.5%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특히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기존 대비 0.8%포인트 상향된 5.1%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 중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1.3%포인트 상향 조정된 5.1%다.

이처럼 경기가 회복세를 띠는 시기에는 통상 자동차 수요가 회복되며 화학 및 석유 업체들의 실적도 개선된다. 지난달 국내 화학제품의 수출액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8.5%나 증가했다.

에틸렌의 스프레드(원료와 최종 제품의 가격 차이)는 최근 톤(t)당 540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4월(톤당 205달러)의 2.6배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 때문에 자동차뿐 아니라 화학·석유주는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 경기민감주로 분류된다.

그러나 연기금은 자동차 관련주를 대거 매수하는 것과 달리 화학 및 석유 업체의 주식 보유 비중은 꾸준히 줄여나가고 있다.

LG화학(051910)은 실적 호조가 예상됨에도 올해 들어 연기금이 대량 매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증권사들은 LG화학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2300억원) 대비 329% 증가한 금액이다. 그러나 연기금은 올해만 LG화학 주식을 1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개인과 외국인이 9350억원, 외국인이 2622억원을 순매수한 것과 대조된다.

SKC(011790)역시 1분기 영업이익이 788억원을 기록해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인 719억원을 웃돌 전망이지만, 연기금의 매도세가 뚜렷하다. 연기금은 SKC의 주식을 올해 들어 총 1074억원어치 팔았다. 같은 기간 개인과 외국인의 순매수액은 도합 1372억원이었다. 한화솔루션(009830)도 연기금의 외면을 받은 종목 중 하나다. 연기금이 올해 들어 총 313억원어치를 팔았다.

롯데케미칼(011170)은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이달 들어 변심한 연기금 탓에 주가가 부진하다. 연기금은 올 1~3월 롯데케미칼 주식을 총 707억원어치 샀으나, 이달 들어 565억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3개월 간 사들인 주식을 고작 4거래일 동안 대부분 팔아버린 셈이다. 이에 롯데케미칼 주가는 지난달 23일 32만원을 찍고 내려와 29만원선에 머물고 있다.

연기금은 대한유화(006650)의 주식도 올 들어 총 290억원어치 팔았다. 금호석유(011780)화학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부터 연기금의 매도세가 무섭게 이어지고 있다. 연기금은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3개월간 약 10억원어치 사들였으나, 이달 들어 그 10배에 달하는 99억원어치를 팔았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엇갈린 투자 전략은 저가 매수 및 차익실현과는 거리가 있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 한 해 6만원대에서 28만원대까지 이미 큰 폭으로 오른 상황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화학주 매도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나, 자동차주를 대거 매수하고 있는 것은 관련 산업의 업황 전망이 특히 긍정적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실적 개선뿐 아니라 전기차, 자율주행 시장 성장의 수혜도 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자동차 산업이 전자 산업과 맞물려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소니와 LG·마그나, 화웨이, 샤오미 등 글로벌 IT 업체들이 대거 진출하는 상황"이라며 "이처럼 시장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 가운데 가장 선방할 수 있는 회사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현대차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