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드럭스토어 왓슨스와 15년만에 결별하고 독자 브랜드 랄라블라로 선회한 GS리테일(007070)이 헬스앤뷰티(H&B)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랄라블라로 이름을 바꾼 후 60곳이 넘는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3위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랄라블라의 매장은 124개로, 2017년 말(186개)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최근 3년 동안 국내 헬스앤뷰티 매장 수가 10% 가까이 늘어난 가운데, 랄라블라는 사세가 급속하게 위축된 것이다.

그래픽=이민경

GS리테일은 CJ(001040)그룹의 올리브영이 선두를 달리면서 급성장하던 H&B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지난 2004년 홍콩 A.S.왓슨그룹과 합작해 왓슨스코리아를 설립하고 이듬해 GS왓슨스를 선보였다. 1841년 창립한 A.S.왓슨그룹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27개국에 매장 1만6000여곳을 둔 세계 최대 H&B 회사다.

GS리테일은 지난 2017년 왓슨그룹이 보유한 왓슨스코리아의 잔여지분(50%)을 인수했다. 양사의 기업문화가 달라 사업전략 수립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였다. GS왓슨스는 2018년부터 독자 브랜드인 랄라블라로 전환됐다. 당시 GS리테일은 10~30대 고객층에 어울리는 젊은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 등을 새단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랄라블라의 3년 성적표는 부진하다. 최근 3년 동안 국내 H&B 매장 수는 1500개 전후로 유지됐지만, 랄라블라는 GS왓슨스 시절보다 매장 수가 30% 넘게 줄었다. 3위 업체인 롭스와 격차도 크게 좁혀졌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이전에는 왓슨그룹과 합작해 (H&B)사업을 운영하면서 점포 확장이나 신속한 의사 결정 등이 어려웠다"면서 "최근 매장 수가 줄어든 데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를 구조조정한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GS리테일이 독자 노선을 취하면서 랄라블라의 인지도를 GS왓슨스 수준으로 쌓지 못한 데다, 다른 H&B 브랜드와 제품이나 가격을 차별화하지 못한 것이 실패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H&B 스토어나 아웃렛, 면세점은 브랜드와 상품을 확보하는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올리브영은 자체 스킨케어 브랜드인 보타닉힐보와 라운드어라운드, 색조화장품 브랜드인 웨이크메이크, 미용소품 브랜드인 필리밀리 등을 꾸준히 출시하며 상품을 차별화하고 있다. 롭스를 운영하는 롯데쇼핑(023530)도 지난 2018년 독일 H&B기업인 데엠(DM)과 손잡고 화장품 브랜드인 발레아를 독점 유통하기로 했다. 반면 랄라블라에서는 왓슨그룹의 자체 브랜드 상품이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작은 내수시장 규모도 어려움으로 지적된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2019년 명목 기준 한국의 소비시장 규모는 약 7995억달러로 세계 13위다. 1위인 미국(16조9030억원)의 4%, 2위인 유럽연합(8조3001억달러)의 9%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5조3525억달러)과 비교해도 15% 규모다. 이 때문에 국내 1위 업체가 아니라면 해외 제품을 수입할 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

신세계(004170)그룹이 프리미엄 아웃렛이나 복합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면서 미국 터브먼(스타필드)이나 사이먼프로퍼티그룹(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 등과 손잡은 것도 부족한 바잉파워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국내 유통업계에서 합작법인이나 라이선스(브랜드 사용권) 계약을 종료하고 성공적으로 독자 브랜드를 정착시킨 사례는 편의점업체인 BGF리테일(282330)정도가 유일하다. 2012년 일본 훼미리마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끝낸 BGF리테일은 CU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광고·홍보 비용을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CU는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1만4923개 지점을 운영 중이고, CU 라이선스를 판매해 말레이시아 시장에 진출할 정도로 편의점시장에 안착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한국의 소비시장 규모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상품과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유통 사업에서는 외국계 기업과 합작하지 않으면 제품을 조달하기 위한 바잉파워(거래에서 우위를 가지는 기업의 구매력)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