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은혜(가명, 34)씨는 지난 1월 장외주식시장에서 반려견 치매약 개발사 지엔티파마의 주식을 샀다. 지난해 바이오 기업에 투자해 고수익을 얻은 친구들의 경험담을 듣고는, 아직 상장하지 않은 ‘원석’에 조기 투자한다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씨의 믿음은 적중했다. 1만7000원대에 불과했던 주가가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지난달 7만원 선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약 두 달만에 ‘대박’에 가까운 수익을 냈지만 익절할 생각은 없다. 지엔티파마가 올 연말 상장을 계획 중이라고 밝힌 만큼, 주식을 계속 보유해 더 큰 수익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들어 비상장 주식시장에서 일부 제약·바이오 관련주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상장된 바이오주는 주가 흐름이 부진하나, 장외시장에서는 투자 심리의 개선세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 반려견 치매약 제조사 주가, 석 달 간 4배 넘게 급등

지엔티파마는 최근 비상장 바이오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종목 중 하나다. 지난 2월 초까지만 해도 장외주식 거래소 증권플러스비상장에서 1만7000원 정도에 거래됐지만, 이후 계속 올라 지난달 23일 7만원을 넘었다.

이 회사 주식이 올 들어 급등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반려견 치매약이라는 희귀한 의약품을 만드는데다, 곽병주 대표이사가 직접 올 연말 상장할 계획을 밝혔다. 최근에는 사모펀드 운용사(PE)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며 주주들의 기대감이 커진 상태다.

이 중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의 투자설은 근거가 없는 소문임에도, 투자 심리는 여전히 고조돼 있다. 스카이레이크 고위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바이오 기업에는 잘 투자하지 않는다"며 지엔티파마 투자설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3개월 동안 가격이 많이 오른 비상장 바이오주의 주가 흐름.

지엔티파마 외에도 에이프로젠, 비씨켐, 한국코러스 등의 주가가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사 에이프로젠의 거래 기준가는 1월 초 1만5000원에서 이달 6일 2만8900원까지 오른 상태다. 항암제 개발사 비씨켐의 주가 역시 올 초 3만8000원대에서 지난달 말 5만5000원까지 상승했다. 러시아제 백신 ‘스푸트니크V’를 위탁 생산하는 한국코러스도 연초 1만9000원에서 이달 6일 5만1000원까지 급등했다.

증권플러스비상장 뿐 아니라 38커뮤니케이션, 서울거래소 등 다른 장외주식 거래소에서도 일부 바이오주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특히 코로나19 진단시약을 만드는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거래 기준가가 8만원대 초반에 불과했으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6일 현재 9만2000원까지 올랐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26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며 투자금 회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운영하는 장외시장 K-OTC에서는 치매 치료제 개발사 아리바이오의 가격 상승률이 돋보인다. 지난해 12월 1만4000원도 되지 않았던 주가가 지난달 3만8400원까지 올랐다. 이 회사는 자본잠식이라는 투자유의 사유가 있음에도, 최근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소식에 연일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 개미, 수십 배 수익 낸 VC 따라 비상장 바이오주 사들여

이들 비상장 바이오주는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제약·바이오주들과는 다른 주가 흐름을 나타낸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제약 관련주들의 평균 상승률은 -1.7%였다. 코스피지수가 1.6% 오른 것과 비교해 부진한 성적이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제약주의 평균 상승률은 1.4%였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의 상승률 4.6%를 크게 밑돌았다.

상장 주식들의 가격이 거의 정체 상태임에도 비상장 바이오주에 대한 개인의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있는 이유는, 앞서 기관 투자자들이 바이오 업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거둔 데서 찾을 수 있다. 공모주에 투자해 이른바 ‘따상(시초가를 공모가의 2배로 형성한 후 상한가를 기록)’에 성공하더라도 2.6배의 수익을 내는데 그치나, 기관 투자자들이 하듯 성장성이 우량한 비상장주를 사면 수십 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

일례로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지놈앤컴퍼니를 통해 원금의 20배 수익을 냈다. 같은 해 상장한 엔젠바이오를 통해서는 투자금의 7.5배를 회수했다.

한 벤처캐피털(VC)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국거래소의 심사 기준이 높아지며 과거에 비해 상장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바이오는 여전히 투자자 입장에서 상장 시 안정적으로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한 바이오 업체의 평균 공모 금액은 3000억원대 후반이었다.

비상장 바이오주에 대한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는 올해도 활발하다.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지난해 바이오·의료 분야에 총 1조197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전체 투자 금액의 28%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전체 투자금에서 바이오 투자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여러 건 이뤄졌다. 인공지능(AI) 기반 제약사 스탠다임은 500억원을, 엠디헬스케어는 209억원을 투자 받았다. 제일약품의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275억원을, 엑셀세라퓨틱스는 200억원을 투자 받았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는 매출액 등 정량적 기준을 기반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심사역 입장에서도 투자 실패에 대한 부담이 덜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기관을 따라서 투자할 만한 업종이 바이오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벤처캐피털 대표이사는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대중에 조금이라도 알려졌다면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으나, 바이오 기업들은 그에 비해 투자 진입 장벽이 낮다"며 "이러한 매력 요인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이 조합을 만들어 투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