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금융거래를 할 때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를 거치지 않는다면 어떨까. 아마 누군가는 토스나 페이팔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송금할 때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경우에도 직불카드나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한다.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인 디파이(DeFi)는 이런 상황을 뒤엎겠다는 취지에서 등장했다. 디파이는 중개 금융사 없이 블록체인 또는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한 금융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기존에 금융 시스템이 해온 역할을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가 대신하는 것이다.

최근 포브스는 "오늘날 소비자가 자본시장이나 금융서비스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며 "각종 대출부터 주식, 채권 거래를 하려면 수많은 금융 중개인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파이는 이런 방식을 피어투피어(peer-to-peer) 관계로 대체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금융 거래를 할 때 금융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는 계좌에 기록이 남았다면, 디파이에서는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가 이 거래를 증명해준다. 디파이 옹호론자들은 민간의 금융 시스템보다 디파이를 통한 금융거래가 더 안전하고, 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지에 힘입어 디파이 시장은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 세계 디파이 시장 규모는 418억달러로 한 해 전(5억6000만달러)보다 75배 증가했다. 대출부터 탈중앙화거래소, 자산관리, 파생상품 등 그 활용 영역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지난 2019년부터 디파이 기업들이 설립돼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델리오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제휴해 대출 및 예치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카카오, 네이버 같은 빅테크 기업은 블록체인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통해 디파이 사업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파이 시장이 성장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다양한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 비트코인에 아예 등을 돌리던 기관투자자와 기업들이 하나둘씩 비트코인을 사들이면서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 가능성에 대한 개인들의 기대감은 증폭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디파이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한계나 보안 문제는 가장 큰 리스크다. 디파이는 책임을 지거나 보증해주는 법적 장치 없이 블록체인 기술에만 의존한다. 거래가 많아질수록 블록체인 거래 속도는 느려질 수 있고, 보안이나 운영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홍 연구원은 "각국 정부의 규제 강화 가능성도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며 "유로존이 발표한 디지털 자산 거래 및 발행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를 비롯해 지난해 말 발의된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규제법 등 규제 방향이 향후 디파이 시장 흐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