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한척 사고로 물류 마비...대체 항로 필요성 대두
가디언 "UN, 대체 운하 두가지 방안 놓고 검토 중"
英 "경험과 전문성 갖춘 영국이 주도적 역할" 군침
전문가들 "지중해-홍해 연결하면 5년 내 준설 가능"
국제사회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 좌초 사고를 계기로 '제2 운하'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 한 곳이 막힌 것만으로 글로벌 물류 마비 사태가 발생하자 대체 항로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1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지역을 따라 신규 운하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시간당 피해액이 100억 달러(약 11조2000억원)에 이르고 이집트가 입은 손실만 10억 달러(약 1조1290억원) 이상으로 추산될 만큼 수에즈 운하 마비의 파급력이 엄청났다는 판단에서다.
유엔 당국이 검토 중인 항로는 △지중해·홍해를 요르단 남부 아카바만 방향으로 직선 연결하는 방식과 △이집트 도시인 카이로·룩소르를 지나는 운하로 총 두 가지다. 한 때 이라크와 시리아를 통과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항로가 너무 길고 위험성이 커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국제터널건설사 OFP 라리올이 유엔 의뢰로 첫번째 방식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5년 안에 운하 준설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특히 과거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 소유권을 두고 충돌했던 영국은 이 항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는 "영국은 북아일랜드로 연결되는 터널링크의 예비 설계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고 전문성도 갖췄다"며 지난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선보인 대규모 인프라 투자 사업을 강조했다. 가디언도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영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다.
두번째 항로의 경우 에버기븐호처럼 컨테이너 2만여개를 싣는 초대형 선박 항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소형 선박 위주로 운영하면 기존에 수에즈 운하 통과 물량의 28%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지역 타당성 조사를 맡은 모 세즈 박사는 "소형 선박 위주로 운영하는 편이 오히려 현대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관리청(CSA) 청장은 이날 에버기븐호 좌초 사태로 이집트의 국가적 평판이 손상됐다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배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라비 청장은 "운송료와 준설·인양 작업으로 인한 운하 파손, 장비 및 인건비 등을 고려한 추정 금액"이라고 했다. 다만 어느 곳에 배상금을 청구할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사고 선박의 선사인 대만 '에버그린'과 선박소유주인 일본 '쇼에이 기센' 중 한 곳이 이집트 당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에버그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보상금 지급을 요구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쇼에이 기센은 최근 CSA와 배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