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최근 박영선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지원 유세에서 "임기 1년짜리 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서울시의회하고 싸워서 이기겠느냐"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화곡역 8번 출구 앞에서 "어떤 사람은 정권 심판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뽑히는 시장은 임기가 1년짜리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위원장은 "문 대통령 임기와도 비슷하고, 시의원, 구의원, 구청장님 임기가 다 같은 날 끝난다"라며 "싸움을 하면 문 대통령과 싸워야 하고 정부하고 싸워야 하고 시의회하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의회만 해도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이다. 싸워서 이기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의 말을 요약하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당선되면, 1년 임기 내내 민주당 소속 시의원은 물론 민주당 소속 24개 구청장들과 싸워야 하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싸워야 할 것이니, 서울시민들은 민주당 소속 박영선 후보를 뽑으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이 위원장의 말 대로라면, 서울시민들이 투표로 뽑은 시장이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펴도, 민주당은 이념과 당이 다르니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같은 날 광진구 아차산역 앞 유세에서도, 구로구 교회 앞 유세에서도 "1년 내내 싸움을 한다면 살림은 누가하고 소는 누가 키우나. 싸움은 딴 사람이 하더라도 시장은 살림을 해야 할 것 아닌가"라며 "중앙정부에서는 대통령하고 싸움하고 시의회에 가서는 109명 중에 101명 하고 싸우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시장은 싸움하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뽑으시겠나"라고도 했다.

이런 취지의 발언은 이 위원장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 후보와 두번째 TV토론에서 서울시 쓰레기 매립지 문제 해결 방안을 두고 토론할 때 비슷한 말을 했다. 오 후보가 쓰레기 매립지 문제 해결을 위해 "인천시와 협의를 잘 하겠다"고 하자, 박 후보는"오세훈 후보와 인천시장은 서로 당이 다르기 때문에 아마 협상이 거의 안될 것"이라고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튿날(31일) 오 후보가 시장이 된다면 매립지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공개 메시지를 냈다. 박 시장은 인천시장으로 취임한 후 3년 동안 민주당 소속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앞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야권에서 '민주당 소속 인천시장이 서울시민을 볼모로 어깃장을 놓는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같은날 오전 국회에서 현 정부 정책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튿날 김태년 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은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며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지지자들이 운집한 현장 유세장에서는 서울시의회와 국회 중앙정부를 장악하고 있으니 너희들 뜻대로 안될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했다면, 당과 상관없이 1년이 아니라 6개월짜리 임기인 서울시장이 오더라도 같이 호흡을 맞춰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말했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에서 176석을 갖고 있다. 이 위원장의 말은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아닌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이 의석수를 동원해 국정에 훼방을 놓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이것이 당론이라면 민주당은 정치를 하면 안되고, 개인적 주장이라면 이 위원장은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 국민이 최우선이 아닌 당의 입장이 최우선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야당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이기는 것이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지난 19대 대선과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표를 던진 것은 민주당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지, 민주당 정치인들 잘 되라고 던진 게 아니다.

선출된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치인은 대리인이자 봉사자일 뿐이다. 이 점을 망각하는 당과 정치인은 항상 국민의 심판을 받고 교체돼 왔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민의(民意)를 배신한 댓가는 올해 서울⋅부산시장 선거가 끝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