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015760)공사 신임 사장 공모 절차가 지원자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 사장 공모에 지원자가 없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1년여 남은 시점이라 차기 사장은 정권 교체 후 물러나는 ‘시한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후보군들이 지원을 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전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마감한 사장 공모에 1명만 지원하자 공고 기간을 오는 5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25조에 따르면 한전 사장은 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람 중에서 주무기관의 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복수의 지원자가 없으면 공운법에 따라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전은 김종갑 현 사장이 연임에 실패하면서 지난달 차기 사장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차기 사장 후보로는 박원주 전 특허청장,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공모에는 단 1명만이 지원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본사.

지원자가 없어 한전 사장 공모 기간을 연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에도 공모 기간을 한차례 연장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한전 임추위가 내부 출신 인사만 사장 후보자로 추천하자 정부가 재공모를 결정했다.

한전 사장 공모 흥행 참패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권 말기에 공공기관장으로 갈 경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한전 사장에 선임됐다가 중도 사퇴하면 다음 정권 내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가에서는 "그만큼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 아니겠냐"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정권 말기에 취임한 역대 한전 사장들은 정권 교체 전에 스스로 물러나거나 정권 교체 이후 경질됐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한전 사장을 지낸 이원걸 전 사장(2007년 취임)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았다. 이때 이 전 사장도 함께 사표를 제출하고 퇴임했다.

2011년 9월 취임한 김중겸 전 사장은 2012년 11월 임기 도중 자진 사퇴했다. 18대 대선을 한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후임인 조환익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취임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선출됐다. 박근혜 정부 때 산자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등 사실상 ‘박근혜 정부’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조 전 사장은 취임 이후 5년동안 자리를 지키며 ‘역대 최장수 한전 사장’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조 전 사장도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그해 임기를 남기고 자진해서 물났다. 이후 한전은 후임 사장을 선출하지 못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2018년 김종갑 현 사장을 선출했다. 정권 말기에 취임한 한전 사장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거나 새 정부에서 경질된 것이다.

관가에서는 이미 문재인 정부가 점찍은 내정자가 있어 다른 후보자들은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후보군들이 도전을 포기한다는 관측도 있다.

한전 사장 선출이 지연되면서 김종갑 사장은 임기를 마친 후에도 당분간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김 사장의 임기는 12일까지다. 한전 임추위는 차기 한전 사장 선출에 최소 한달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