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소재 경쟁도 치열
분리막 생산공장 짓고 기술개발 강화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터리의 안전성을 좌우하는 분리막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고성능 분리막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는 가운데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면서 선두 업체들의 뒤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만 놓고 보면 중국이 이미 1위 자리를 탈환했고, 이어 기술력도 따라잡기 위해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4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으로 이뤄졌는데, 이 중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서로 만나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만나 열이 발생하고, 배터리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배터리 제조사들도 고성능 분리막 확보와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폴란드에 건설중인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공장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지난해 약 40억㎡였던 글로벌 분리막 수요가 2025년이면 160억㎡ 규모로 약 4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2023년을 기점으로 분리막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서 ‘분리막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이 분리막 생산설비 증설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분리막 업체들은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고성능 분리막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제 투자에 나섰다. 생산 공장을 늘려 증가하는 분리막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분리막을 더 얇게 만드는 박막화를 통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배터리 소재 수직계열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096770)의 분리막 제조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통해 고성능 분리막 사업을 육성 중이다. SKIET는 오는 5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폴란드 공장 증설에 1조원을 투입하는 등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폴란드 실롱스크와 중국 창저우에 짓고 있는 신규 공장이 순차적으로 가동되면 연말에는 연간 생산능력이 지금의 3배 수준인 약 13억6000만㎡로 늘어난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시장을 독점해왔던 일본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도 공격적인 증설 계획을 내놓았다. 아사히카세이는 지난 2018년까지 세계 분리막 시장 점유율 17%로 1위였으나, 2019년 중국 은첩고분에 밀려 2위(점유율 15%)로 떨어졌다. 아사히카세이는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2025년까지 연간 분리막 생산능력을 30억㎡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도레이도 2018~2019년 연 생산능력을 8억5000만㎡ 수준으로 30% 늘리는 등 외형 확장에 나섰고 지난해 헝가리 분리막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7월 신규 공장이 완공되면 도레이의 연 생산능력도 10억㎡로 추가 20% 증가할 전망이다.

그래픽=김란희

여기에 중국 소재 기업들이 빠르게 몸집을 키우면서 한국과 일본 경쟁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1위 분리막 제조사인 중국 은첩고분은 2019년 기준 글로벌 시장의 18%, 중국 시장의 41%를 차지했다. 은첩고분은 지난 2018년 중국 최대 배터리 분리막 제조사인 상해은첩(上海恩捷) 지분 90%를 인수하면서 뒤늦게 배터리 소재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2위 분리막 제조사 소주첩력(Suzhou Jieli)을 인수했고, 12월에는 중국 분리막 제조사 Newmi Tech 지분 76.36%를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을 확장해왔다.

은첩고분은 지난해 헝가리에 1억8300만유로를 들여 연 4억㎡ 규모의 분리막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물량 공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회사의 분리막 생산능력은 2017년 3억9000㎡에서 지난해 33억㎡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까지 생산능력을 63억㎡까지 늘려 경쟁사들과 격차를 더 벌린다는 계획이다.

은첩고분이 만든 분리막은 성능이 아직 일본이나 한국 업체들이 생산하는 분리막에 비해 떨어지지만, 회사가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 기술개발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어 당분간 한·중·일 분리막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분리막 소재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신규 업체의 진입이 어렵다"며 "앞으로 상위 5개 업체들간 경쟁과 승자독식 현상이 더 심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