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상위 10위 중 韓 기업 없어
삼성 뺀 글로벌 점유율 10년째 1% 미만
파운드리 점유율 대만 66%·韓 19%로 격차 커
"AI·IoT 반도체 등 체질 개선 빨리해야"

반도체를 생산 중인 TSMC 팹 내부.

2025년 383조원의 시장 규모 형성이 전망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를 제외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은 글로벌 점유율 1%를 10년째 넘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사업 구조를 시스템 분야도로 균형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개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중 1위는 미국의 퀄컴이다. 194억7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년보다 33.7% 증가했다. 2위는 브로드컴으로 177억4500만달러, 전년 대비 2.9% 매출이 늘었다. 3위는 엔비디아로 154억1200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전년과 비교해 무려 52.2% 매출 신장을 보였다. 4위 미디어텍과 5위 AMD는 각각 109억2900만달러, 97억63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 전년 대비 37.3%, 45% 성장했다.

상위 10위 회사의 국적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이 6곳, 대만 3곳, 영국 1곳으로, 국내 업체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국내 1위 업체로 평가받는 실리콘웍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1조1619억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순위가 처져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3389억달러(약 383조원)로 예측된다. 2019년 2269억달러에서 연평균 7.6% 고성장한 것이다. 보통 팹리스 시장 규모는 시스템 반도체의 60%쯤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025년 팹리스에서만 220조원의 가치가 창출되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2019년 기준으로 3.2%에 불과하다. 10년째 변화도 없다. 더욱이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점유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이는 퀄컴·엔비디아·AMD 등을 앞세운 미국이 시장의 65%를 장악하고 있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다. 또 점유율 17%의 대만과 15% 중국과 비교해도 굉장히 낮은 수치다.

특히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컴포넌트(MC) 점유율은 2015년 0.9%에서 2019년 0.5%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는 자동차용 반도체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불어닥친 반도체 공급부족(쇼티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이 없는 것"이라며 "현재 재고를 모두 소진하게 되면 국내 자동차 공장은 모두 멈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으로 분류돼 팹리스 순위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매출로 놓고 보면 글로벌 5위권쯤에 든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외 국내 팹리스는 거의 전멸상태로,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은 회사는 실리콘웍스, 에이디테크놀로지, 제주반도체, 어보브반도체, 아나패스, 텔레칩스 등 상장 20개사 가운데 6곳뿐이었다.

시스템반도체의 한 축을 이루는 파운드리(반도체 위·수탁생산)의 경우에도 한국은 상당히 고전 중이다. 트렌드포스 기준 2021년 1분기 1위는 대만 TSMC로, 시장의 56%를 차지했다. 뒤를 이은 삼성전자는 18%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어 대만 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가 나란히 7%로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중국 SMIC는 5%로 5위다.

그래픽=박길우

파운드리 상위 10위 업체의 국적을 살펴보면 대만 4곳, 한국·중국 각 2곳, 미국·이스라엘 각 1곳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66%로, 한국의 19%를 크게 앞선다. 10위인 DB하이텍의 글로벌 점유율은 1%가 되지 않는다.

업계는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의 균형 잡힌 발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모리반도체 산업만큼 시스템반도체에서도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최근 데이터 경쟁이 치열해지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사용 분야가 확대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크다. 아직 시장 지배력이 월등한 회사가 없어 기술 전환이 빨리 이뤄질 경우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반도체의 2배 이상으로 데이터 경제 전환 등으로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며 "특히 아날로그 직접회로(IC), AI 반도체는 상위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성장 초기 단계로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다만 현재 국내 팹리스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시제품 제작이나 연구개발(R&D) 비용 부담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정책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팹리스의 핵심 역량은 설계인력으로 대규모 장치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창원지원, 수요기업과의 연계 강화 등이 이뤄진다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며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 조선 등과의 연계를 강화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 등이 요구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