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태어난 장남과 삼남…日서 롯데 기반 함께 닦아
'라면' 갈등으로 벌어진 형제…1978년 사명 '농심' 변경 후 의절
신춘호 회장, 작년 1월 신격호 회장 빈소 안 나타나

27일 신춘호 농심(004370)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끝내 풀지 못한 앙금으로 남은 친형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의 관계가 재조명받고 있다.

유통업계에 익히 알려져 있던 신격호, 신춘호 형제의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지난해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다. 지난해 1월 19일 신 명예회장이 숙환으로 타계했을 당시 신춘호 회장은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신격호(1921년생) 명예회장과 신춘호(1930년) 회장은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9살 차이로 10남매(5남 5녀) 중 각각 장남·3남이다.

두 형제는 롯데그룹의 기반을 함께 닦았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롯데그룹의 근간인 껌 제조사 (주)롯데를 세우며 사업을 시작할 당시 신춘호 회장도 함께 기업을 키웠다. 신춘호 회장은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일본 롯데 부사장을 맡았으며, 1962년부터는 일본 롯데 이사를 지냈다.

형제의 사이가 틀어진 건 한일협정 이후 롯데가 국내로 사업을 넓히는 과정에서다. 신춘호 회장이 라면 사업에 진출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신춘호 회장은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지금의 농심 사옥인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롯데공업을 창업하고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그러나 신격호 명예회장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이를 만류했다. 그럼에도 신춘호 회장이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 사명을 쓰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이에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형과 의절했다. 이후 양측은 수십년간 왕래를 끊고 집안의 제사도 따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춘호 회장은 이후 ‘ 새우깡·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신라면’ 등 잇달아 히트작을 내놓으며 농심을 국내 라면·스낵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난해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범롯데가(家)의 가족 관계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특히 신춘호 회장과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지 주목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분향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그러나 신춘호 회장은 당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나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영결식 등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냈다. 신춘호 회장은 건강 문제로 거동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두 형제의 갈등이 결국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춘호 회장은 이날 오전 3시 38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다. 신격호 명예회장 이외에 둘째 형 신철호 전 롯데사장도 작고했다. 이에 따라 범롯데가 5남5녀 중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