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높은 금리를 바탕으로 20·30세대 투자 자금을 빨아들였던 간판상품 ‘파킹통장’ 금리를 낮추면서 수신(受信) 총액 줄이기에 나섰다. 수신고가 갑자기 불어나면서 예대율(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의 비율) 셈법이 복잡해진 데다, 이자 비용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 3위권인 웰컴저축은행은 파킹통장 ‘웰컴 비대면 보통예금’ 최대금리 적용 한도를 낮췄다. 웰컴저축은행은 22일부터 예금액 3000만원까지만 연 1.5% 최대금리를 제공하고, 3000만원 초과분에는 연 0.5%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5000만원까지 최대 연 1.5%를 보장했다.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도 다음 달 16일부터 파킹통장 ‘SBI사이다 보통예금’을 조절하기로 결정했다. SBI저축은행은 50억원 이하까지는 연 1.2%, 초과분에는 연 0.2%를 기본금리로 적용할 계획이다. 이전에는 예금액과 상관없이 연 1.2%를 기본금리로 제공했다.

저축은행에서 선보이는 보통예금·저축예금·기업자유예금 같은 상품들은 예치금액이나 기간·입출금 횟수에 상관없이 약정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해 은행권에서는 운행을 멈추고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워놓듯, ‘목돈을 잠시 두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해당 상품에 가입한 통장을 ‘파킹통장’이라 부른다.

서울 시내 한 저축은행.

이들 상품은 얼핏 시중은행 자유입출금식 통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금리가 훨씬 높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기준 시중은행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6개월 예치 기준 연 0.4% 수준이다. 반면 저축은행 파킹통장은 단 하루만 맡겨도 상품별로 최소 1%가 넘는 금리가 붙는다.

이 때문에 파킹통장 상품에는 저금리에 마땅히 자금을 굴릴 데 없는 법인 금융 소비자나, 대규모 투자자금을 보유한 전업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하 조치로 이들은 졸지에 여신금리 1%포인트가 줄었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법인들이 한 번에 큰돈을 입출금하는 점을 고려해 유동성 관리 차원에서 금리를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은 지난해만 해도 예대율 기준치인 100%를 맞추기 위해 높은 금리를 줘가며 파킹통장에 돈을 끌어들였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시중 주요 저축은행 기준 파킹통장 잔액은 지난해 12월말 3조985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조1783억원)보다 2조8074억원 급증했다. 파킹통장에 들어온 돈이 일년 만에 두배 반 가까이(138%) 불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전체 수신액은 79조1764억원으로 전년보다 20% 늘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주식시장이 주춤하면서 증시로 몰렸던 자금 일부가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으로 돌아오자, 예상보다 더 빠르게 수신고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수신고가 여신(대출) 총량보다 빠르게 늘면 저축은행은 파킹통장 이용자에게 줘야 할 이자 부담이 커진다. 고금리 상품에 주어지는 혜택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잠시 가입을 멈추는 것은 이자 비용을 덜 부담하기 위해 은행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이어 저축은행에 가계대출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도 파킹통장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이달 11일 저축은행중앙회가 주관한 서민금융포럼에서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에 (자금을) 공급을 늘리라고 했는데, (저축은행은) 가계에 압도적으로 많이 대출했다"며 "과도하게 대출규모를 늘리는 데 대해선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저축은행 업계에 대출을 줄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서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서면 굳이 이전만큼 높은 금리를 줘가면서 수신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돈을 빌려줄 곳이 없는데, 이자를 부담하며 금고를 필요 이상 채워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단순해 예금금리를 올리면 수신고가 올라가고 반대로 금리를 낮추면 내려간다"며 "주요 저축은행 모두 올해 들어 예대율이 기준치인 100% 선에 맞춰 적절히 관리되고 있어 파킹통장 상품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