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사입부터 배송까지, 중소상공인 위한 풀필먼트 스타트업 부상
네이버 지난해 풀필먼트 스타트업 6곳에 264억원 투자
"이커머스 시장 파편화…다양한 물류 스타트업 수요 늘 것"

김지민(27) 씨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사장님’이다. 창업 6개월째, 아직 직원을 둘 여력이 안 돼 혼자 장사한다. 그가 주문, 포장, 배송, 반품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이유는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 덕분이다. 김씨는 "신상마켓처럼 동대문 의류 사입부터 배송, 쇼핑몰에 올라가는 사진까지 대신 찍어주는 플랫폼을 이용하면 혼자서도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풀필먼트 스타트업이 벤처투자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풀필먼트란 물류 전문업체가 판매업체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상품의 입고와 보관, 주문, 포장, 출고 등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픽=이민경

풀필먼트는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이 1999년 처음 선보인 모델로, 최근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성공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은 미국 내 170여개의 풀필먼트 센터를 활용해 입점업체에게 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를 판매해 돈을 번다. 최근 뉴욕증시에 상장해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쿠팡도 2014년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으로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해 사세를 넓혔다.

◇ 물류 스타트업과 손잡은 네이버, 왜?

흔히 물류하면 거대 자본을 지닌 대기업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엔 중소 이커머스의 풀필먼트 서비스로 돈을 버는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IT 대기업 네이버는 지난해 쇼핑·물류 스타트업 10여 곳에 투자했다. 이 중 6곳은 ▲위킵 ▲에프에스에스(FSS) ▲딜리셔스 ▲두손컴퍼니 ▲아워박스 ▲브랜디 등 풀필먼트 스타트업으로 총 264억원이 투자됐다. 네이버는 그해 10월 국내 1위 물류배송 업체인 CJ대한통운과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바꾸고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네이버가 대기업·스타트업을 막론하고 다양한 물류 업체들과 손을 잡은 이유는 온라인 쇼핑 수요가 급증하면서 쇼핑 배송 시간을 단축하는 풀필먼트가 핵심 전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버 커머스 부문 매출은 1조897억원으로 전년 대비 37.6% 성장했다. 거래액은 28조원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17.4%를 차지한다.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브랜디의 풀필먼트 센터 전경.

특히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가 분산된 이유는 온라인 쇼핑 고객들의 요구가 점점 다양화·개인화되고 있어서다. 네이버 커머스는 크게 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 스토어와 중소상공인(SME·Small and Medium Enterprise)이 운영하는 스마트 스토어로 나뉜다. 브랜드 스토어의 물류는 CJ대한통운이, 스마트 스토어의 물류는 스타트업들을 통해 진행한다.

네이버는 올해도 물류 투자를 이어갈 방침을 세웠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중소상공인들이 사업 특성에 맞춰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물류 솔루션을 선보일 것"이라며 "다양한 업체와 풀필먼트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선식품부터 동대문 의류까지…풀필먼트 전문성 확대

풀필먼트 스타트업들은 중소 상인을 타깃으로 전문성을 내세운다. 팀프레시는 콜드체인 전문 풀필먼트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마켓컬리 출신인 이성일 대표가 2018년 9월 출범했다. 온라인에서 식품을 판매하는 상거래 업체들이 주 고객으로, 새벽 배송, 풀필먼트 서비스, 화물주선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창업 1년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매출액 396억원을 거뒀다. 고객 수는 200곳에 달한다. 작년에는 2회에 걸쳐 총 26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회사 측은 이를 활용해 올해 3~4개의 새벽배송 전용 물류센터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팀프레시의 풀필먼트 프로세스.

김승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새벽 배송을 포함한 온라인 물류의 전 과정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것이 팀프레시의 경쟁력"이라며 "새벽 배송에 최적화된 운송관리시스템(TMS) 시스템 및 새벽 배송 기사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구축 등을 통해 배송 안정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위킵은 자체 플랫폼에 여러 쇼핑몰과 물류센터, 택배회사를 연동해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품종 소량 상품을 취급하는 전자상거래 판매자를 대상으로, 고객사별로 전담 매니저인 ‘위킵맨’을 배치해 접수부터 반품, CS(고객만족) 처리까지 풀필먼트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기존의 3PL(Third-Party Logistics·3자 물류)에 정보기술(IT)과 컨설팅을 결합한 4PL(Fourth-Party Logistics·4자 물류) 서비스를 지향한다.

패션 플랫폼인 브랜디와 신상마켓(운영사 딜리셔스)은 동대문 패션 풀필먼트(DFS)로 주목받고 있다. 브랜디는 동대문 생태계에 맞는 여러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해 주는 주문관리시스템을 개발해 DFS에 도입했다. 소매상이 출고 요청을 하면 도매상에 관련 정보가 연동돼 브랜디가 사입부터 검수 및 포장, 최종 고객 배송까지 처리하는 B2B2C(기업 간, 기업·소비자 간 거래를 결합한 형태) 서비스다. 현재 매출 비중이 플랫폼 비즈니스 60%, 풀필먼트 40% 수준이지만 향후 풀필먼트 비중을 7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중소 이커머스를 대상으로 풀필먼트를 지원하는 물류 스타트업이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위킵의 풀필먼트.

B2B(기업간거래) 플랫폼 신상마켓도 지난달 풀필먼트 서비스 ‘딜리버드’를 시작했다. 이를 이용하면 늦은 밤 동대문에 방문해 의류를 사입을 하거나 상품을 받을 필요 없이 사입, 포장, 배송 등 의류 판매에 필요한 서비스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풀필먼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조8800억원으로, 내년엔 2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은 "이커머스 시장이 개인화하고 파편화된 소비 형태로 성장하고 있어 물류 배송 시스템도 다양한 모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맞춰 다양한 물류 스타트업의 등장과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