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연기금의 ‘팔자’ 행렬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달 15일에는 52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돌아서며 매도 랠리가 종료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날 하루뿐이었다.

올해 들어 연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총 15조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개인은 42조원어치를 샀다. 이 때문에 연기금은 잘 나가던 코스피 하락의 주범으로 몰리며 동학 개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이 연일 매도 행렬을 이어가는 것은 리밸런싱(자산 조정)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16.8%까지 낮춰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이 21.2%에 달했으니, 약 20조원어치를 더 팔아야 한다.

이에 증권업계 안팎에서는 국민연금이 리밸런싱과 관련된 규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18일에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는 수정안을 의결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연기금 측 반응은 칼 같았다. 즉각 "국내 주식 비중 확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 없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 상황으로 미뤄 볼 때 연기금의 순매도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연기금의 매도 랠리를 막을 수 없다면,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개미가 연기금의 매도 공세 속에서 생존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각자 나름의 전략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연기금이 매도 랠리 속에서 사들인 종목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안에서 규칙을 찾는 것이다.

올 들어 연기금의 순매수액이 가장 컸던 종목은 S-Oil(010950)이다. 총 1080억원을 순매수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830억원, OCI(456040)는 777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팬오션(028670)도 각각 509억원, 477억원을 순매수했다.

연기금이 사들인 종목들은 ‘경기민감주’로 분류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유주(S-Oil), 화학주(롯데케미칼·OCI), 해운주(팬오션)와 철강주(포스코인터내셔널)는 모두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 주식이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액 상위 종목도 마찬가지다. 철강주인 POSCO가 1054억원으로 1위에 올랐으며, S-Oil과 롯데케미칼, 한국조선해양, 금호석유, 팬오션, 현대미포조선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연기금이 이들 종목을 왜 사들이는지, 언제 매도해 시세차익을 낼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경기 회복에 베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많은 증시 전문가들도 미 국채 금리 상승을 경기 회복의 신호로 해석한 바 있다.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나타난 채권 금리 급등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채권 금리가 다시 요동치고 있는 만큼, 경기민감주를 매수해온 연기금의 방향성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연기금을 막을 수 없다면, 그들의 방향성에 편승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