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화된 제작 공정으로 만든 첫 '플랫폼 위성'
차세대 중형위성 1호 발사…후속 줄줄이 양산
개발비, 기존 3000억→1호 1600억→2호 860억
"위성 산업, 앞으론 국가 아닌 민간 기업이 주도"

차세대 중형위성 1호의 임무 수행 상상도.

국산 인공위성을 자동차처럼 규격에 맞춰 양산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이렇게 만든 첫 인공위성 ‘차세대 중형위성(차중) 1호’가 20일 발사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날 오후 3시 7분(한국시각)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차중 1호가 러시아 소유즈 발사체(로켓) 2.1a호에 실어 발사된다고 밝혔다. 항우연은 "위성의 표준 플랫폼을 개발함으로써 후속 위성의 개발 비용과 기간을 줄이고, 위성 기술을 민간 기업으로 이전해 위성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이 위성 발사가 갖는 의미를 전했다.

‘표준 플랫폼’이란 규격화된 본체와 그 제작 공정을 말한다. 위성은 몸통 역할을 하는 본체와 카메라·레이더처럼 직접 임무를 수행하는 구성품인 탑재체로 구성된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정지궤도위성(천리안) 같은 기존 위성들은 탑재체에 맞춰 매번 본체를 맞춤 설계·제작하고 성능 시험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1999년 아리랑 1호를 발사한 이래 후속 위성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3000억원의 비용과 7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차세대 중형위성 1호에 적용된 위성 플랫폼 기술의 개념도. 본체를 규격화하고 임무에 따라 필요한 탑재체만 교체함으로써 개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반면 앞으로 차중 1호의 후속 위성들은 별도의 설계 없이 이미 규격화된 본체를 그대로 사용하고, 필요한 탑재체만 바꿔 조립함으로써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차중 1호는 기존의 절반 수준인 1579억원의 개발 비용으로 5년 만에 개발이 끝났다. 1호의 본체 제작 공정을 그대로 사용하는 차중 2호는 이보다도 낮은 860억원으로 3년 만에 개발돼 내년 상반기 발사될 예정이다.

차세대 중형위성 1호에 들어간 구성품과 제조 기업.

위성 플랫폼을 통해 민간 기업들의 위성 산업 진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기업들이 저마다 특화된 탑재체를 개발해 본체에 조립하는 식으로 위성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항우연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시스템, 데크항공, 제노코 등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차중 1호를 개발하며 관련 기술을 이전했다.

현재 마무리되고 있는 차중 2호 개발은 KAI 포함 67개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차중 3~5호도 기업 주도로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차중 2~5호는 기업들이 만든 탑재체만 바꿈으로써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차세대 중형위성 1~5호 개발 및 발사 계획. 모두 같은 위성 본체를 사용하고 목적에 따라 탑재체만 바뀐다.

항우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인공위성 2666개 중 절반에 가까운 1327기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16기로, 중국(363기), 러시아(169기), 일본(80기), 인도(60기)보다 점유율이 크게 낮다.

지난해 기준 주요 국가별 운용하는 인공위성 수.

우리나라도 위성 산업화 시대에 맞춰 양산 체제 구축을 꿈꿔왔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실현하기 어려웠다. 필요한 탑재체를 해외 선진국에서 사들인 후 이에 맞는 본체를 설계·제작해야 하다 보니 하나의 규격으로 통일할 수 없었다.

위성에 들어가는 구성품의 국산화율을 충분히 높인 지금에서야 규격화가 가능해진 이유다. 우리나라 위성은 아리랑 1호 이래 국산화율이 꾸준히 높아져 2015년 발사된 아리랑 3A호는 66.7%에 도달했고, 5년 후인 지난해 개발된 차중 1호는 75.4%로 향상됐다. 관측 임무를 담당하는 탑재체의 국산화율은 66%에서 94.7%로 높아졌다.

차중 1호의 무게는 약 540㎏으로 1000~3000㎏대인 아리랑, 천리안 위성보다 가볍다. 기존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어졌지만 성능은 뒤지지 않는다. 차중 1호에 탑재되는 카메라의 해상도는 50㎝급으로, 현역 위성인 아리랑 3A호와 동급이고 현재 전세계 최고 성능(25~30㎝)보다 한 단계 낮은 급이다. 50㎝급은 약 500㎞ 궤도를 돌며 지상의 50㎝ 떨어진 두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해상도를 의미한다.

차중 1호는 이날 한국시각으로 오후 3시 7분 발사돼 1시간 4분 후 로켓에서 분리된다. 분리 후 38분이 지나면 노르웨이 스발바르 지상국과, 다시 58분이 지나면 남극의 트롤 지상국과 교신한다. 이로부터 6시간 37분이 더 지난 오후 11시 24분쯤 대전 항우연 지상국과 교신을 시작한다. 발사 과정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차중 1호는 497.8㎞ 상공에서 6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쳐 오는 10월부터 국토·자원관리, 재난재해 대응 등을 위한 관측 임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차중 1호는 이미 지난해 상반기 개발이 완료돼 11월 발사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날로 연기됐다. 러시아 모스크바와의 직항편이 끊기면서 로켓 성능·안전성을 검증할 러시아 과학자들이 입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