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자사 전기차에 ‘각형 배터리’ 적용을 확대한다고 선언하면서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으로 나뉘는데 완성차 업체별로 선호하는 배터리가 다르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 받아온 폭스바겐이 돌연 노선을 바꿔 각형 배터리를 선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폭스바겐 첫 순수전기 SUV ID.4

18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각형(49%), 파우치형(27.8%), 원통형(23%) 순이다. 폭스바겐이 선택한 각형 배터리는 사각형 캔 모양으로, 배터리를 둘러싼 알루미늄 금속 외관 덕에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외부 충격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아 안전하다. 중국 CATL, BYD와 삼성SDI(006400)등이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이 비용을 절감하고 회사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각형 배터리 도입을 결정했다고 분석한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비용의 약 3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면 배터리 가격을 낮춰야 한다. 각형 배터리는 파우치형에 비해 제작 공정 단계가 간소해 대량 생산 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다만 금속 외관 때문에 무겁고 열 방출이 어려워 냉각 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의 파우치형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주력하고 있는 파우치형 배터리는 얇은 비닐 재질의 주머니에 담는 형태라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배터리 재료를 층층이 쌓아올려 만들기 때문에 소재를 둘둘 말아 캔에 담는 각형 배터리보다 공간을 빈틈없이 사용할 수 있어 에너지 밀도가 높다. 완성차 입장에서는 차량별로 맞춤형 배터리를 주문할 수 있지만, 정해진 디자인이 없는 특성상 표준화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생산 원가는 높은 편에 속한다. 유휴 공간이 적은 탓에 열 관리도 쉽지 않다.

그래픽=이민경

테슬라가 고집하는 원통형 배터리는 가장 오래된 배터리 기술이다. 과거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사용하다가 테슬라가 전기차용으로 선택하면서 외연을 넓히게 됐다. 원통형 배터리는 표준화된 크기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원가 부담이 가장 낮다. 다만 원통 형태의 특성상 공간 활용도는 높지 않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일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이 주요 제조사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BMW, 벤츠 등 독일 업체들이 각형 배터리를 쓰고, 현대차(005380)·기아(기아차), GM, 포드 등은 파우치형을 사용해왔다. 원통형은 테슬라가 선호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를 선택한 사건을 계기로 업계에서는 배터리 제조사간 기술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배터리 제조사별로 주력하고 있는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하고 원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CATL은 배터리 공간 활용률을 약 20% 높인 '셀투팩 기술'을 개발했다. 배터리는 셀이 모인 모듈, 모듈이 모인 팩으로 구성되는데, 셀투팩은 모듈을 생략해 셀에서 바로 팩으로 이어지는 설계 기술이다. 모듈을 없애 공간을 더 확보하면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부품 수는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파우치형 배터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배터리 데이’에서 차세대 ‘4680 배터리’를 소개하면서 미래 전기차 표준으로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2170(지름 21㎜·높이 70㎜) 소형 원통형 배터리보다 크기를 키워 주행거리 등 성능을 대폭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도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의 니켈 함량을 높이는 등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어떤 배터리가 주력으로 부상할지 가늠할 수 없다"며 "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배터리 제조사간 기술개발과 수주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 관련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터리 업계에서는 자사 배터리가 하루아침 만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