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고소득자 대상으로 대대적 증세 추진
"부양책, 인프라 투자 재정 충당 위한 성격"
여당서도 부정적 기류 감지…"증세 연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미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에 있는 바닥재 설치업체 스미스 플로링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법인세·소득세 인상 등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논의에 본격 돌입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과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조세 형평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의회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라트 라마머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은 이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기업과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높여 연소득 11만달러를 포함한 중산층 가구를 보호하는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며 "지난 수십 년간 훌륭하게 잘 해낸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좀 더 많은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핵심적인 소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의 대(對)미국 투자를 확대하도록 장려하는 것 역시 이번 정책의 주된 목적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바이든표 증세 프로그램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시장의 역변으로 오히려 유례없는 이득을 취한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부담금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공약 반영…"대규모 경기부양 재정 조달 위한 것"

미 행정부가 대대적인 증세를 추진하는 건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3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경기불황과 실업률 상승 속에서도 소득세와 유류세를 인상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세금 감면을 일부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포괄적인 증세안이 추진되는 것은 거의 30년 만이다.

블룸버그는 복수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법인세율 인상( 21%→28%) △연소득 4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37%→39.6%) △연간 자본소득 100만 달러 이상에 대한 세율 인상 △기업의 조세 특례 축소와 부동산세 범위 확대 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공약한 내용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낮췄던 세율을 다시 올리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고, 최고세율도 2025년까지 39.6%에서 37%로 인하하는 등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중산층 가정은 공정한 몫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데 최상위 소득을 버는 사람들은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 행정부의 증세 추진은 코로나19 이후 대대적인 부양책과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미국이 지난해 3월부터 총 6차례의 부양책을 실시하며 지출한 금액만 약 5조6000억달러다. 연방정부의 2020회계연도 본예산보다 약 9000억달러 정도 많은 규모다. 조세 관련 비영리 단체 등 일부 기관은 바이든의 대선 공약이 실현되면 10년간 2조1000억달러(약 2375조원)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매코널 "좌파 공약 가득한 트로이 목마" 여당 내서도 반발

문제는 의회의 협조 여부다. 대유행이 끝나지 않았고 실업률도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증세를 추진하긴 이르다는 우려 때문이다. 공화당은 증세로 직결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프라 투자계획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백악관의 증세 추진 소식에 "꼬리표만 '인프라 법안'일뿐 사실상 좌파 정책으로 가득 찬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라며 "세금을 더 걷기 위한 초당적 지지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도 증세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역구마다 실업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증세 추진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재무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각국이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저한도를 12%로 설정하되 이를 어긴 국가에 투자한 다국적 기업에 본국이 그만큼 추가 과세를 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 유치가 다급한 저개발 국가 등이 해당 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