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쇼핑몰 “대체 텍스트 입력하기에는 과도한 비용” 법원 “대체 텍스트 제공은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

일러스트=정다운

몇 번의 클릭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일반인에겐 편리한 쇼핑 수단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상품의 정보가 사진이나 그림 등 이미지 콘텐츠로 업로드되기 때문이다. 쇼핑몰 사이트에 이미지 콘텐츠를 말로 풀어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가 없다면 사진속 제품이 마스크인지, 라면인지 시각장애인들은 알 수 없다.

국내 대형 온라인 쇼핑몰 대부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시각장애인 963명은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차별을 받고 있다"며 롯데쇼핑, 이마트, 이베이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한성수·박미선·안지열)는 지난 2월 18일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 역사상 법원이 온라인 쇼핑몰에 시각장애인들의 편의를 제공하라고 명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이번 판결이 시각장애인들의 편의 증진에 미칠 영향은 상당했다. 어찌 보면 ‘돈이 안 되는’ 이 싸움에 법무법인 바른이 시각장애인들을 대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롯데쇼핑·이마트는 법무법인 태평양, 이베이코리아는 법무법인 광장이 변호했다.

◇법원 "차별 맞다"… 시정 위한 '적극적 조치'도 명령 시각장애인들은 2017년 7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20조, 제21조 등을 근거로 소를 제기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전자정보(온라인 쇼핑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화면낭독기·대체텍스트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하며 이 같은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건 위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사 남성용 가죽지갑’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할 경우, 관련 상품 이미지를 올릴 때 ‘

이에 법무법인 바른은 온라인 쇼핑몰 상품 설명은 물론 이벤트 화면 등 웹페이지 대부분이 이미지 콘텐츠로 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대체 텍스트가 있다고 해도

동시에 이 같은 상황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빠른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도 함께 요구했다.

반면 태평양과 광장은 온라인 쇼핑몰 측은 대부분의 협력업체가 상품을 직접 등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모든 상품에 대해 쇼핑몰이 직접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기에는 과도한 비용과 부담이 따르며, 이행하기에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했다.

3년 넘게 진행된 1심 끝에 결국 법원은 온라인 쇼핑몰들이 시각장애인을 차별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는 원고 963명에 각 10만원을 지급하라"며 "모든 상품의 정보, 광고, 이벤트 안내, 이미지 링크, 이미지 버튼(각 기능과 용도)과 관련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선고했다. 시각장애인 측이 청구한 적극적 조치에 대해서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시각장애인 측이 기존에 청구한 배상액(200만원)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금액이지만 내용상으론 시각장애인 측의 압승이었다.

법원은 또 협력업체를 대신해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온라인 쇼핑몰 측의 주장에 대해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지 시각장애인에 대해 배려를 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는 온라인 쇼핑몰 측의 우려에 대해선 "피고의 매출액, 사업규모 등에 비춰 볼 때 그런 비용이 피고에게 과도한 비용이라거나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객관적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눈 감고 ‘온라인 쇼핑’ 고민하며 접근"

법무법인 바른 김재환(사법연수원 22기), 김민수(사법연수원 35기), 김지희(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

시각장애인 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끈 건 법무법인 바른의 김재환(사법연수원 22기), 김민수(사법연수원 35기), 김지희(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였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했기에 자료 준비, 증거 채집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승소해 뿌듯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김재환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에게 온라인 쇼핑은 이동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쇼핑 수단"이라며 "특히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커진 요즘 이들에게 온라인 쇼핑 이용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각장애가 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인터넷에 접속하는지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고민하면서 접근했다"며 "재판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피고 측 업체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편의 제공을 이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바른 측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온라인 쇼핑몰의 차별 정황과 증거가 확실했던 만큼 재판 시작 이후 빠른 시일 내 결론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럼에도 재판이 3년 넘게 늘어진 건 이번 사건이 ‘최초’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김 변호사는 "사상 첫 사건이었던 만큼 재판부에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청구했던 배상액에 비해 적은 금액이 선고된 것도 최초 사건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적은 배상액에도 항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배상 금액보단 판결 내용에 더 의미를 뒀다. 특히 대체텍스트를 제공하라는 재판부의 명령을 의뢰인들이 매우 환영했다"고 전했다. 그는 "부디 피고 측 업체의 명령 이행을 시작으로 다른 온라인 쇼핑몰 업체도 적극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롯데쇼핑과 이마트, 이베이 측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각 10만원을 배상하고 모든 상품 사진에 대해 대체텍스트를 제공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오는 항소심 재판에서도 바른이 시각장애인 측을, 법무법인 태평양과 광장이 온라인 쇼핑몰 측을 그대로 대리할 예정이다.